일찍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평화로운 시간.
딸이 갑자기 도토리묵을 먹고 싶단다. 냉동실에는 도토리묵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의 가루가 준비되어 있지만.
‘이런! 어쩌지? 도토리묵을 만들고 자? 아님 말어?’
내 머릿속은 정교한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다.
피곤하니까 내일 해도 괜찮다는 실속파 자아와, 딸이 그토록 원하는데 뭘 망설이냐며 ‘너 엄마 맞아?’ 하고 뼈를 때리는 독한 수석 셰프 같은 자아가 충돌한다. 결국 계산기의 전원을 꺼버리고 나를 주방으로 밀어 넣은 건, 지독하게 다정한 수석 셰프.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 있는 도토리전분을 꺼냈다. 물과 전분의 양은 5대 1. 냄비에 물을 붓고 전분을 넣은 후 가루가 잘 풀어질 수 있도록 나무 주걱으로 휘휘 젓고 있던 찰나.
난장판이 된 싱크대.
“오 마이 갓!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놀라서 튀어나온 말에 딸은 더 놀라는 눈치다.
“왜요 엄마? 괜찮아요?”
“어... 어어 괜찮아.”
가루는 순식간에 내 옷과 주방 바닥, 싱크대 곳곳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멋쩍은 웃음으로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내 속은 지금 이 상황이 괜찮지 않았다.
‘아... 이걸 또 언제 치우냐’
머릿속에서는 벌써부터 걸레질을 하는 미래의 내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역시 요리는 나에게 여전히 쉽지 않다.
힘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앞서버린 탓이다.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이 가루가 엉겨 붙어 보드라운 묵이 될 때쯤, 내 피곤함도 딸의 만족감 속으로 기분 좋게 녹아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10분의 노동 끝에 얻게 될 탱글탱글한 묵.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걸쭉해지면서 되직하게 엉겨 붙는 걸 보니 이젠 굳히기만 하면 되겠다. 묵이 달라붙지 않게 유리그릇에 올리브오일을 발라주었다. 되직한 묵을 싹싹 긁어 담은 그릇을 얼음팩 위에 올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견딘다.
한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 살짝 온기가 남아있다.
‘이젠 자고 싶다. 그냥 냉장고에 넣어버릴까?’
잠의 유혹이 턱 끝까지 차오른 찰나, 딸이 내 마음을 읽은 듯 쐐기를 박는다. 따뜻할 때 넣으면 미생물이 번식한다는 과학적인 조언.
“알지, 당연히 알지"라며 무안함을 넘기지만, 속으로는 인내의 쓴맛을 다시 삼킨다.
다음 날 아침, 접시 위로 뒤집힌 도토리묵은 오일 덕분에 매끄럽게 탈출에 성공했다. 상추를 썰고 양념장을 끼얹으며 서두르다 그만, 얌전하게 준비해 둔 김가루를 잊었다.
정신없는 나의 건망증. 이미 그릇에 담긴 묵무침 위에 김가루 올리고 딸이 수저를 양손에 들고 살살 버무린다.
딸내미 밥상을 보니 상추가 살아서 식탁 밖으로 달려갈 기세다. 모양새가 좀 투박하면 어때. 젓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딸의 눈빛이 이렇게나 초롱초롱한데.
“으~음. 역시 나는 묵을 좋아해. 진짜 맛있어요.”
젓가락 가득 묵과 상추를 집어넣는 딸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커진 동공만큼이나 목소리 톤이 한껏 올라간 걸 보니 어젯밤 고단함과 인내의 시간을 버틴 보람이 있다.
맛있게 오물거리는 딸의 통통한 볼을 보니 내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간다.
내가 요리를 좋아했다면 적어도 잔머리 돌리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엄마는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요리를 싫어하면서도 기어이 묵을 쑤게 만드는 이 고집스러운 사랑 또한 나의 일부라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