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으로 기괴하게 운영하는 고교 학점제와 함께 망할 정책은 분명 디지털 교과서일 것이다.
학습자 맞춤형 교육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결국 문제 풀이 교육을 얼마나 반복적으로 잘 연습시킬 수 있나를 의미할 뿐이다. 이 또한 얼마나 한국적인가.
가장 큰 문제는 개별 정책의 비일관성이다. 학생의 진로, 학업을 고려해 다양한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고교 학점제를 추진하면서 학생 수 감소를 명분으로 교원을 줄이는 아이러니한 정책을 아무런 고민 없이 시행한다. 교육을 단순 경제 논리로 접근하니 일어나는 일이다. 단위 학교에서 담당해야 할 일의 총량은 그대로인데 인원을 줄이니 학교마다 업무 분장으로 난리다. 거기다 일부 지역과 일부 학교의 학급당 인원수는 여전히 과밀이라 개별화 교육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현재 우리 학교 1학년의 학급당 학생 수는 31-32명이다.
교육부는 AIDT가 있으니 학생 맞춤형 문제풀이식 교육은 AIDT에게 맡기고 교사들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고차원적 사고 능력 계발과 정서 지원에 신경 쓰란다. 줄어들지 않는 업무, 한 반에 2-30명 되는 학생들이 여전한데, 이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그래, 그렇게 돈을 들여 개발한 AIDT가 어떤지 궁금해 주말에 소중한 시간을 들여 벡스코의 AIDT 전시회에 갔다. 영어 과목 AIDT의 구동 방식과 원리를 들으니 정말 실망스러웠다.
https://m.yna.co.kr/view/AKR20241219039900051?input=1195m
우선 학습자 수준을 즉각적으로 측정해 그에 맞는 다양한 문제를 제공하는 알고리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원점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지, 문항 난이도를 고려한 측정인지, 아니면 인지 진단 모형을 활용한 것인지조차 모르겠더라. 원점수 기반의 측정과 문제 제공을 위해 구독료를 이렇게나 많이 낼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할 거면 문제나 매달 개발해서 교사에게 제공하면 될 일 아닌가. 채점과 수준 분류야 구글 설문지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거기다 말하기에 대한 AI의 분석과 피드백도 무척이나 초라했다. 어떤 출판사는 학생의 말하기에 큰 문제가 없으면 넘어가고, 문제가 있으면 다시 말해보세요 정도의 피드백만을 제공하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기초적인 진단과 피드백을 AIDT라고 이름 붙이다니.
글쓰기는 어떤가. I am a boy.를 I are a boy.라고 쓰니 are를 am으로 고쳐야 한다고 이야기할 뿐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도 주지 못하는 초보적인 수준. 물론 어떤 출판사는 형식적 측면의 피드백을 구체적으로 주기도 하였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수준도 아니었다.
오늘 기사를 보니 구독료가 최소 4만 원일 것으로 보인다. 3과목, 4만 원, 600명만 잡아도 7200만 원이다. 한 해 학교 기본 운영비를 상회하고도 남는 수준. 이 예산을 시도교육청에서 마련하느라 온갖 예산이 미친 듯이 줄어드는 중이다. 한 협의회에 참석하니 장학사 왈 “내년 교육청 예산이 줄어들어 이제 모든 협의회는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나는 기계, 프로그램을 활용한 맞춤형 피드백과 개별화 수업에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인데도, 이런 막무가내식 정책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런 교육적 철학 없이 이걸 교육 현장에 도입하겠다는 생각이 정말… 단순하게 학생의 문해력 부족, 디지털 기기 중독을 근거로 AIDT를 반대하고 싶지 않다. 이 주장 또한 전혀 입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정책엔 철학이 없고, 프로그램 자체에 내재된 학습 원리는 너무 빈약하고 허술하기 때문이다. 으으!!!!!
국어에서 AIDT 개발됐으면 진짜 학습 과학 측면에서 이 거지 같은 시스템을 제대로 비판했을 텐데.
여하튼 고교 학점제 + AIDT 딱 망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