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ife goes 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Jan Mar 19. 2021

지구는 둥그니까

버려지는 것들과 지구에 관한 생각

 퇴근길, 집 앞에 잔뜩 쌓여 있는 폐지와 플라스틱이 눈에 들어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커다란 수레에 담아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고요한 밤 아무도 없는 길에 드르럭 드르럭 수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리수거장에 다다르자 예쁘게 정리된 박스들이 보였다. 이 많고 예쁜 쓰레기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각자의 집에서 분리수거장으로 옮겨지고 누군가 공들여 정리한 것을 또다시 어디론가 옮길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거기에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분리수거를 했다. 말끔히 비워진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저분 해진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놓인 핸드 워시를 누르자 하얀 거품이 손에 닿았다. 손을 비비고 물을 틀어 헹궈냈다. 거품은 물과 함께 배수구로 흘러 들어갔다. 물은 정교하게 연결된 파이프들을 거쳐 마침내 강과 바다에 이를 것이다. 호흡할 때마다 마시고 뱉어낼 물고기들, 하얀 배를 뒤집어까고 입을 벌린 채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물고기라도 언젠간 인간의 일용한 양식으로 쓰일 텐데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물을 잠갔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과학시간에 배웠던 지구는 완전한 구는 아니지만 확실히 둥글었다. 위로는 두꺼운 대기층이 겹겹이 존재하며 자신의 질량에 비례하는 힘으로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 그러므로 만들어진 모든 쓰레기는 지구가 끌어안은 채로 영원히 그 위에 존재한다. 그들은 멈춰 있지 않고 지구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공전한다. 온 세상 사람들과 온 세상 동물들과 온 세상 모든 것들을 만난다. 그리고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모든 형태의 것으로.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력이라는 말이 우습지만 노력했다. 집 안에서 물티슈 사용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음식은 최대한 남김없이 먹었다. 일회용 비닐 대신 용기를 사용했다. 외출이 없는 날에는 아이들을 물로만 씻겼다. 생리 컵을 사고 화장솜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와 가족들이 좋은 것을 먹고 마시길 바라는 이기심이었다. 샴푸통에서 샴푸를 짜낼 때 드는 죄책감을 덜기 위한 욕심이었다. ‘나 하나 바뀐다고…’란 생각이 들기도 전에 내가 생산해내고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들에 매일 놀랐다. 물티슈와 비닐과 택배 상자가 없던 세상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익숙해진 내가 매일 이상했다.


 아이가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녹지 않게 투명한 용기에 담아 베란다에 두었다. 하루 만에 하얗던 눈사람은 녹아서 검은 물이 되었다. 아이는 ‘눈사람은 어디 갔나, 지저분 해졌다’며 울상을 지었다. 며칠이 지나 아이의 기억 속에서 눈사람이 사라졌을 즈음 물을 세면대에 버렸다. 다음날 아침 아이가 내게 쪼르르 달려와 말했다. “눈이가 사라졌어요! 어디 갔어요 눈이?” 동그랗고 투명한 눈을 보니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엄마가 눈이를 바다에 보내줬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에게 말을 이었다. “눈이는 눈이 엄마가 있는 바다로 돌아갔어. 그렇지만 다시 눈이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만들고 또 바람을 타고 눈이 되어 내려 지안이한테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우리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자. 알겠지?” 내 이야기에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아이가 말했다. “네! 눈이는 꼭 돌아올 거에요! 지안이한테 꼭 돌아올 거에요!” 지구같이 동그란 두 눈이 초승달처럼 굽었다.

Feb 3,  2021

매거진의 이전글 엔지니어에서 필라테스 강사로, 지난 8년의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