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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나니공주 May 10. 2023

울지 마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팀에서 바자회를 해서 돈을 좀 모았는데, 적은 금액이지만 공을 좀 들였던 터라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그렇게 사내 사회 공헌센터에서 연결해 준 봉사활동이었다. 도착한 곳은 주공아파트 일층에 지역 아동 돌봄 센터였다. 들어가기도 전에 쪼그만 얘들 한 둘이 튀어나와 빼꼼 거리는 곳.



급하게 마스크를 빌려 쓰고 들어간 곳에는 초등 저학년부터 다문화 가정 아이들까지 열다섯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있었다. 모금한 돈으로 후원한 무선 조종 탱크를 만드는 조립 키트를 같이 하기 위해 옹기종기 앉았다. 나는 가장 어린 초등 2학년 여자아이들 세 명을 맡았다. 키트는 어려웠다. 나름 알려주겠다고 앉았는데 너무 못해서 미안하다는 나에게 “그럼 선생님은 뭐 잘해요?”라고 되물을 수 있는 악의가 하나도 없는 곳.



한 시간 남짓한 키트 조립시간 동안 한 친구가 좀 유난했다. 내 바로 앞 테이블에 있는 남자아이였는데 친구한테 왕왕 고함을 치기도 했지만 기쁨을 뱉는 웃음도 유달리 컸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봉사시간이 삼십 분이나 지났지만 우리 테이블 외에는 완성된 곳이 없어 나는 그 친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테이블에서도 그 친구만 특히 진도가 느렸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이버를 돌려 나사를 박는 대신 빠르게 조립하고 형태를 갖추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꿨다.


그리고 마지막 바퀴를 끼우고 건전지를 끼웠는데 이게 웬일 탱크가 움직이질 않았다. 다시 보니 건전지를 넣는 부분의 부품이 불량이라 건전지가 접촉이 안되고 있었다. 여분으로 샀던 키트의 부품을 찾는 동안 봉사활동은 마무리가 되었다. 센터를 총괄하는 선생님께서는 봉사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빠르게 활동을 정리했다.



그렇게 탱크를 완성하지 못한 한 친구만 빼고 우리는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오버된 시간이었고, 회사에서 빌린 셔틀버스 기사님께도 더 이상 양해를 구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돌봄 센터에서도 얼른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집으로 보내야만 하는 마무리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친구는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옆에 앉아 아이를 달래는 나에게 총괄 선생님은 “ 가만두세요 선생님~ ㅇㅇ이는 원래 감정을 잘 조절 못해요~”라며 별스럽지 않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이 옆에 앉아 부품 한 개만 갈면 된다고, 우리가 가고 저녁을 먹고 나면 센터 선생님께서 마무리해 주실 거라고 달래는 나를 보고 더 크게 울며 말했다.



빨리 조립해서 집에 가져가고 싶었는데 계속 자기만 뒤처져서 마음이 힘들었다고, 간신히 완성했는데 작동도 잘 안 된다고, 새 부품으로 갈아준다더니 갑자기 선생님이 쓰레기통(정리 박스)에 본인의 탱크를 넣어버려서 상실감까지 느꼈다고...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서러움이었다. 그런 친구를 앞에 두고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친구가 아니라, 감정이 너무 큰 친구인 것 같았다. 작은 상황도 크게 느끼고, 느낀 큰 감정을 크게 표현해야 하는 친구였던 것이다. 너무 맑아서 모난 돌까지도 다 보이는 거짓이 없는 맑음. 한 명을 빼고는 다들 만족감이 높았던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친구 생각에 며칠을 잠에 잘 들지 못했다.



부들거리던 손, 우두둑 떨구던 눈물, 안절부절 나만 못하고 있는 것 같은 그 마음. 명치부터 오금이 찌릿하고 자꾸만 눈물에 눈앞이 뿌예지는 그 느낌. 다 같이 출발한 경주, 남들은 모두 결승선인데 나만 저 멀리 뒤떨어진 기분. 마음은 급하고 달려 나가야 하는데 자꾸만 발이 엉켜버리는 그 마음을 내가 너무 잘 알아서 마음이 자꾸만 쓰렸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매번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 “오늘 저녁은 삼성에서 온 선생님들이랑 과학 키트를 만드는 날이야”로 시작해서 다른 선택지 없이 이걸 따라가는 친구들은 어떤 선생님이 봐주는지, 본인이 손으로 하는 무언가에 소질이 있는지, 아니면 내 키트가 문제가 없는지 등등에 따라서 완성하는 속도도 성취감도 모두 달라진다.



틀려도 된다. 늦어도 된다고, 선생님도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잘하는 걸 찾고 있다고, 어쩌면 굳이 잘하는 게 없어도 될지 모른다고. 이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친구에게 또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만나는 친구들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앞으로도 봉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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