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망하려고 내딛는 창업
난 언제나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휴학도 없이 다이렉트로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넷이라는 찬란한 나이에 장애인 인권센터에 처음 발을 디뎠다. 인권센터를 직장으로 삼는 건, 고등학교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늘 정당하고, 멋있는 선택을 할 것만 같았던 인권센터에는 나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살기에 딱 적합했다.
매일이 문제제기와 싸움의 반복이었다. 그 때 백윤지현의 삶 안에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즐기고 사랑하는 게 메인이었다. 그치만 아침 9시에 출근해 지하철이 끊길 때 쯤 퇴근하는 활동가 백윤지현에게는 늘 문제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어떻게 싸울지 잘 결정하는 싸움꾼 재능이 필요했다. 어떤 날에는 인권침해 가해자에게 몸통 박치기를 당해 현장에서 경찰을 부른 날도 있었으니. 그 시절 우린 정말 용감했고 드라마틱했다. 그러나 우주 최강 어리석었었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들은 하나 둘 씩 인권센터를 떠나기 시작했다. 팔목이 아프거나, 허리 디스크가 오거나, 새로운 장애가 생기거나, 생리 불순이 심하거나, 난임 혹은 불임 판정을 받거나였다. 그 중 나는 6개월 동안 생리가 뚝 끊겼던 사람. 그런데도 결혼이나 아이 계획이 없어 편하고 좋다며 히히덕 거리던 철없던 때였다.
인권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멋있는 척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퇴사하는 날까지도 마이크를 잡고 기자회견 사회를 보던 나는, 이곳을 떠나는 게 일말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해볼 거 다 해봤다는 자신감.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고, 많이 다쳐도 봤다는 이상하면서도 그럴싸한 허세. 그리고 실제 많은 사람들의 문제가 나와 동료들의 손 안에서 해결되거나 되고 있는 중이라는 작은 뿌듯함이 있었다. 여기서 내가 겪은 날 것의 경험은 한 때 나를 잃어버리게 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내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거라 확신했다.
그런 내가 새로운 곳에서 교육 활동을 하며 얻은 인사이트로 창업이라는 새로운 판에 뛰어든다. 것도 일하면서 만난 선배가 아닌 후배 동료들과 함께. 다른 이유는 없다. 지난 날 나의 모습과 곧 다가올 활동 10년을 바라보니 새로운 도전이 궁했다.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같은 작은 고민을 지원해주는 곳에 처음 제안을 한 게, 운좋게 펀딩까지 연결되어 조금 더 빨리 실패의 경험을 맛볼 수 있게 됐다.
분명 이번 창업은 망한다. 창업의 창자도 모르는 내가 잘 되리란 법은 없다. 나의 목표는 망함 속에서 배우는 것. 그리고 다음 번에 망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채비해야 하는지 예행연습을 하며 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두렵지 않다.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