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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다방 Apr 28. 2022

사상 질병 휴직

일단 퇴사보다 휴직

[사상 질병 휴직:휴직할 공무(公務)가 아닌 사사로운 일로 입은 부상]                             

사상 질병이나 부상으로  1개월간의 휴가기간 이후에도 완치되지 않는 경우 특별휴가기간 포함 최장 6개월까지   있다.


 회사 portal site의 팀원 휴가 탭에 "길다방 선임, 사상 질병 휴직"이라고 게시되었다. 당황스러웠다.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되겠지만 회사에 출근하고 있는 동안에는 가까운 분들 외에 다른 팀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가고 싶었다. 그것도 '사상 질병 휴직'... '개인 사정 휴직' 정도로 할 수는 없을까? 듣기만 해도 뭔가 불쾌하고, 거부감이 들어 뜻을 찾아봤다. 공무가 아닌 사사로운 일로 입은 부상. 사사로운 일이라니! 공무에 의한 것이 아닌 개인적인 질병들을 사사로운 일이라고 치부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회사는 구성원들의 피, 땀, 눈물로 굴러가는 것이건만. 과연 구성원들 각 개인의 질병들이 완전히 공무와 동떨어져 있을까? '완전하게' 동떨어진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또 다른 사상(死狀: 거의 죽게 된 상태)이 훨씬 '사상 질병 휴직'에 어울리는 뜻이 아닌가 싶다. 사사로운 일로 인해 서두가 길어졌지만, 아무튼 나는 2개월간의 사상 질병 휴직을 떠난다. (거창하게 1년쯤 다녀와야 하지만.. 고작 2개월이다.)


 휴직의 이유는 개인적인 것도 있었겠지만, 8년간의 직장생활에 모두 써버린 에너지 탓에 온 번아웃과 project 이동으로 인한 적응 스트레스와 새벽마다 오는 공황발작, 중등도 우울증으로 약도 복용하고 심리치료도 받으며 6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이렇게는 죽겠다 싶어서였다. 처음부터 휴직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심리치료사 선생님께서 매번 나에게 불안이 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여기 계속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 어느 날 오후.. 퇴직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이 공간에서 이 사람들한테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휴직을 하게 되면 나의 일을 떠맡을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과 찝찝함이 더 힘들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날따라 팀장님이 회의가 많으셨는지 아무 말이 없으셔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면서 8년간의 회사 생활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너무 찌질하지만 버스 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정이라는 것이 뭔지.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지만, 사람들 때문에 위로받기도 했던 나의 첫 직장과의 이별이라는 감성에 젖어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잃어버린 6살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마스크 안이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로 버스에서 내리던 때 팀장님한테서 문자가 왔다. 너무 당황했다고. 내일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윗 분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잘 있던 애가 갑자기 퇴직한다니 황당할 수밖에. 나는 겉으로 힘든 표현도 잘하지 않는 성격인 데다,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것은 드러내기 힘든 일이기에 더 말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퇴직하는 마당에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지금 나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팀장님은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분이다. 입사해서 처음 배정되었던 과제의 project manager 였고, 육아휴직을 다녀온 후 지금까지 팀장님으로 계신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함께 견뎠고, 많이 아껴주셨고, 능력을 인정해주신 고마운 분이다.

 그런 팀장님이셨기에 퇴직에 대한 말씀을 드리기가 힘들기도 죄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삶을 계속 살기에는 너무 벅찼기에 다음 날 팀장님과 만나 다짜고짜 가방 속에 품고 다녔던 진단서를 내밀었다. (폭발할 순간을 대비해서 가지고 다녔다.) 저 아프다고, 좀 쉬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퇴직을 신청한다고 이해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꾸깃 꾸깃한 진단서를 펼쳐 보시고는 이내 침묵이 흘렀다. 팀장님 눈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망할 눈에서는 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울면 지는 건데. 자꾸 눈물이 났다. 진단서를 만지작 거리시며 팀장님이 꺼낸 첫마디는 "그동안 고생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힘든지는 몰랐어" 사실 팀장님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주셨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미안하다는 말씀에 고개를 들 면목조차 없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근데 넌 좀 이기적으로 살아. 남들 눈치 보지 말고.. 휴직하고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때 다시 퇴직을 선택해도 되잖아. 무 자르듯이 너의 경력을 단절시키지 말고." 맞는 말이었다.(잘 설득당하는 타입인가) 그동안 보지 않아도 될 눈치를 너무 보며 살았다. 항상 나는 나한테 더 엄격했고, 타인에게는 관대했다. 그래서 탈이 났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결정하고 싶었다. 퇴직 버튼을 눌러 HR팀장님까지 알게 된 마당에 다시 번복하는 게 더 힘든 일이었지만, 휴직해보고 쉬면서 다시 생각해보자로 마음이 기울었다. 팀장님과의 면담이 끝난 후, 감사하게도 임원 면담에서도 휴직으로 배려해주신 덕분에 '사상 질병 휴직'을 신청할 수 있었다.



 휴직 신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HR에서는 사규에 따라 의원급 진단서가 아닌 대학병원급 진단서를 다시 받아오라고 했다. 내가 정신과적 질병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힘든 일이기도 하고, 보통 정신적으로 힘들면 로컬 병원을 먼저 찾지, 대학병원을 찾는 사람도 드물지 않나. 그 당시(벌써 한 달 반 전이다. )에는 약이 잘 듣지 않아서, 회사에 앉아 있기도 힘든 때였는데, 나는 내 병을 증명하기 위해 대학병원의 새로운 의사를 만나 나의 상황, 증상에 대해 복기할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 블루로 아픈 사람들이 많아진 탓에 대학병원 예약도 힘든 데다가 예약을 잡아 진료를 볼 수 있다한들 바로 진단서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기본 한 달 정도는 치료를 받아야 했고, 심리검사 결과도 필요하다고 했다.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개정이 시급한 구시대적 사규에 또 한 번 좌절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2개월의 휴직 권고 진단서를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고 병이 악화되기도 했으니, 나와 같은 병으로 아파하고 계신 분들 중 휴직 생각이 있다면, 먼저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다니는 것을 권장한다.



 회사 생활하면서 매번 느꼈지만, 정말이지 회사 내 소문은 빛의 속도보다도 빠르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숨길 일은 아니지만 동네방네 가십거리가 되는 것은 싫었는데.. 이미 소문은 퍼졌고 이런 상황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퇴직 신청을 한 후, 한 달 반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행히 바뀐 약이 나에게 잘 맞아 공황발작과 불면, 우울감도 조금 나아졌고, 마음도 나름 정리가 되고, 낯짝도 꽤나 두꺼워졌다. 이제 '사상 질병 휴직'으로 일상이 단단해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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