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바다, Kitsilano, Vancouver, BC]
바다, 강아지 그리고 수박
하얀 천으로 만들어진 에코백 속에는 물감 여러 개와 다섯 가지 종류의 붓과 물, 붓을 씻을 통, 심지어는 캔버스까지 들어있다. 어떤 물감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에는 가지고 있는 모든 물감을 다 담아버렸다. 노을을 풀어낼 연보라, 스카이 블루, 레드, 화이트. 바다를 흉내 낼 코발트블루, 베이비 핑크. 안 그래도 터질 것 같은 가방은 더 부풀어 동그랗고 두툼한 우스꽝스러운 모양이 되어버렸다.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쯤이었다.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취미이기도 했고 유화처럼 물감의 냄새가 룸메이트들에게 민폐가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무엇보다 물감의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 어째서 그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새하얀 바탕화면에 커서만 깜빡이며 한 줄도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한 그날이 계기였을까 아니면 완성하고도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 backspace를 연신 누르던 그 밤이 계기였을까. 아무튼,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무척이나 고뇌하는 존재이기에 종이에 선뜻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마음을 비우고 캔버스를 꺼내보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꽉 찬 만월 같은 가방을 들고 키칠라노로 향했다. 혜리를 만났고, 우리는 빈 밴치를 찾아 물감을 풀어놓고, 결국에는 물감과 주객전도가 되어 바닥에 쪼그려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우리의 캔버스에는 어느샌가 각자의 바다가 담겨있었다. 수박이 먹고 싶다던 혜리의 캔버스에는 먹음직스러운 수박이 그려져 있었고, 나의 캔버스에는 망망대해를 떠돌며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돛단배가 있었다. 바다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리며 우리는 어떤 걸 더 그려 넣어야 할까 고민한다.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혜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더 그려 넣겠다고 말했고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혜리가 빨간 혀가 삐죽 나온 장난기 많은 골든 레트리버를 그리는 동안 나는 키칠라노를 감상한다.
카약을 휘저으며 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사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와르르 웃는다. 그리고 그들이 던진 웃음은 곧이어 파도에 부서져 내게로 흘러왔다. 모래사장에는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이 있고, 큰 파도는 아이들의 꿈과 성을 질투라도 하듯이 가져가 버린다. 깜찍한 발자국을 내며 원반을 쫓는 강아지가 보였고, 작은 파도는 주인과 강아지 다정스러움에 끼고 싶어 퉁명스럽게 강아지의 발자국을 지워버렸다. 꿈과 성과 웃음과 다정함을 다 담은 바다가 요란하게 반짝여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정말,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되뇌며.
우리는 완성된 그림을 나란히 세워 놓고 그만 깔깔 웃어버렸다. “진짜 못 그렸다.”를 서로 연발하며. 그때 몸채만 한 스피커를 들고 다니던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묻는다.
“너희 화가야?”
그 말에 나는 한 번 더 크게 웃어버렸다. 나는 바다 위에 출렁이는 검고 허접한 것이 ‘돛단배’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했고 혜리는 모래 위의 갈색 뭉치가 ‘골든 레트리버’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했지만 그는 꽤 오랫동안 우리의 바다를 감상했다. 캔버스의 바다는 아마, 무구하여 아름다울 것이다. 욕심이라고는 수박과 강아지와 바다를 좀 더 두고 보고 싶은 바람 같은 것이 전부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