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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셰프최순남 Aug 04. 2022

터지는 바퀴, 이어진 여행

 변화 속에 우리는 산다. 변화는 다양하다.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다양하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듯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작은 ‘바뀜’이 있게 마련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변화는 흔적을 남긴다. 신나는 일이든 화나는 일이든. 변화가 크면 후폭풍도 크다. 옆에서 옆으로 건너가는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서 저쪽으로 이동하는 정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변화 큰 공간이동에는 여러 감정들이 따라붙는다. 기대 설렘 불안 긴장이 마구 뒤섞이는 묘한 경험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가 첫 번째 큰 공간이동이었다. 미국 동부 코네티컷에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때가 두 번째이다. 미국에서 강산이 세 번쯤 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역시 만만찮게 컸다.     

 그럼에도 셋 중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했던 때다. 비자 발급 문제와 일자리가 바뀌는 통에 온 식구가 삶의 울타리를 죄다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변화의 진동을 고스란히 혼자서 느끼고 해결했겠다. 8학년과 10학년 두 아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버거웠을 테다. 이솝 이야기 《시골 쥐와 서울 쥐》를 방불케 하는 급변화였다.


 제2외국어를 독일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캘리포니아에서는 드물었다. 학군이 좋은 곳은 더더욱 찾기가 어려웠다. 찾다 찾다 한 곳을 물색했다. 엘에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이나 되는 월넛이라는 곳이 목적지였다. 이사 갈 아파트 앞에는 커뮤니티 칼리지도 자리 잡고 있었다. 큰 아이가 비록 10학년이었지만 이미 코네티컷 대학에서 미적분을 배우고 있어서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거라 쉽게 예측했다.

   

 미국 학교는 대부분 9월부터 시작이다. 여기에 맞춰 우리는 8월 중순에 코네티컷을 떠났다. 큰 짐은 우편으로 먼저 부쳤다. 버스보다 더 큰 레크리에이션 RV(recreational vehicle) 차량을 펜실베이니아에서 싼값으로 구입해서 나머지 이삿짐을 채웠다. 미 대륙을 2주에 걸쳐 횡단하는 멋진 계획을 구상했다.

 “되도록 빨리 와 주세요.”

 새로 시작할 회사에서는 급하게 요청했다. ‘이런 기회가 인생에서 다시 올까?’ 아무래도 쉽잖겠다는 예감으로 과감히 긴 여행을 택했다. 아이들이 한 번쯤 가고 싶고 갈 가치가 있는 곳을 골고루 방문하자는 야무진 취지였다. 여행 마치고 차를 캘리포니아에서 팔면 이익도 클 거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생각만 해도 슬슬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이 여행을 후회했던 지점이 나타났다. 웨스트 버지니아 급경사 고속도로를 지날 때였다. 이토록 경사진 도로는 난생처음이었다. 경사 수치 7%가 이처럼 소름 끼칠 정도일 줄은 미처 상상도 못 했다.     

 아이 아빠도 난생처음 대형 RV를 운전하는 터였다. 더욱이 대형 버스에 가속도가 붙자 당장이라도 뒹굴거나 속도 조절이 안 돼 앞 차를 들이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머리가 쭈뼛쭈뼛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머나먼 길을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운전도 하지 않았던 나의 손엔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는 정확히 기억 못 한다. 길 좌우로 쫙 펴진 웅장한 숲이 눈에 들어올 때 안도의 숨과 감사의 기도를 마음속으로 비로소 수없이 되뇌었다.


 “운전하지 마라. 꿈자리 사나워.”

 어느 날엔가 꿈자리 뒤숭숭하다고 시어머니께서 그날만큼은 운전하지 말라며 전화가 왔다. 가야 할 길이 멀기에 그런 경고를 우리는 무시하고 다시 출발했다. 잘 달리나 싶더니 바퀴가 터졌다. 두 번째였다.

 처음은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 근처 비포장도로에서 타이어가 찢어져 하루를 캠핑하면서 수리를 했더랬다. 이번엔 켄터키 주에서 바퀴가 또 터졌다. 어쩌지 못하고 그곳에서 이틀을 하릴없이 우리는 머물렀다. 싸게 구입한 이런 차를 믿고 계속 여행을 해야 하는지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다른 대안이 없기에 이 차에 운명을 맡기고 우리는 다시 ‘출발’ 해야 했다. 언제 다시 또 터질지 모르는 네 바퀴에 네 식구가 운명을 걸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이 줄줄이 벌어지면서 우리 여행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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