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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Sep 22. 2021

타이포그래피는 브랜딩이다

내가 생각하는 타이포그래피와 브랜딩

 디자이너인 나에게 타이포그래피는 아직도 어렵게 느껴지는 일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상황에서 많이 사용되는 서체나 조합은 있겠지만, 0.1mm의 사소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차이에서 정답을 고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답이란 것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나는 디자인이나 브랜딩에 대해서는 나름 확고한 신념이나 정돈된 개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타이포그래피는 그렇지 않다. 나는 ‘디자인’이란 사유의 결과물이고, 단순한 아름다움을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브랜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며 수단이다. 여러 요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경험들의 총집합이다. ‘브랜딩’이란 실재하지 않는 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브랜드에서 서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서체도 그 소통 방식의 하나다. 서체를 선택하는 것은 그 브랜드가 말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이포그래피는 그 서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과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타이포그래피는 브랜딩과 같다. 시인 김춘수의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다.


 서체 디자이너 토비아스 프레레존스는 “서체는 정보를 담아 보여주는 크리스털 잔과 같다”고 말한 바 있지만, 나는 꼭 그렇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서체가 내용 전달의 역할만 할 뿐 그 자체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였다면 타이포그래피가 이렇게 계속해서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서체의 탄생이 정보 전달 목적으로만 생겼을지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어쨌든 지금 사람들은 서체를 보고 단순히 정보 전달만 받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서체와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많은 감각을 선사받는다. 심지어 디자이너가 의도하지 않은 감각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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