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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덕생 Jun 16. 2023

내가 꿈꾸는 숲을 위하여 2…….

‘백만 년 전 신화의 재탄생’

언뜻 숲사이로 낯익은 밴이 서서히 멈춘다. 어제 그 인자하게 생긴 백인 털보 아저씬가 보다. 얼른 하든 일을 멈춘고 앞으로 나선다. 이것저것 안부 인사를 끝내고 밴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전해준다. 어제 약속한 계란이다. 포장지와 계란 츄레이는 이곳에 흔한 식품점 PUBLIX 로고가 찍혀 있지만, 내용물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각양각색의 계란으로 꽉 차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고마운 이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정말로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했을 때 주변분들의 염려가 새삼 떠오른다. ‘ 총기 사고로 늘 위험에 처한 미국을 왜 가려 하냐고’ 그랬다, 사실 이민을 결정했을 때 그런 염려와 불안감에 걱정도 많이 했었고, 이민 와서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아이들 학부모나 선생님들을 제외하고는 이웃과 별 교류 없이 지내온 세월이었기에, 작은 이웃의 온정이 정말 고맙고 반갑다. 이 이쁜 계란들을 집사람과 아이들의 단체 메세지방에 올리며 자랑한다. 20여 년의 세월,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 부대끼고 힘들었던 시간들은 눈 녹듯이 잊혀가고, 지금 나는 힘들지만 노동을 즐기고, 이웃들의 따스한 배려를 만끽하고 산다. 더없이 좋다. 그리고 하나하나 신선하게 내 앞에 닥치는 사소한 일 모두가 좋다.


창작의 기쁨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건가? 상상을 뛰어넘는 기술로 인하여 요즈음 AI도 창작을 할 수 있다고 하던가?


숲의 나무들을 정리하다, 흙속에 묻힌 돌들을 보며 돌화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얼마 전 ‘첼시 플라워 쇼’에서 한국의 조경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의 ‘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로 주목받았다는 글을 보았다. 황지해 작가와는 어림 반푼어치도 겨눌 수 없지만 나도 이곳에 ‘화전민의 삶’의 냄새가 풍기는 보잘것없는 작품을 만들어 보련다. 노동의 수고스러움은 있지만, 역시 창작의 기쁨은 어디에도 겨눌 수가 없다.

하나, 하나 돌을 쌓아 가는 작업을 하면서, ‘백만 년 전  신화의 재탄생’이란 토픽 주제를 떠 올렸다. 미미한 작업에 얼토당토않는 문구지만, 내 작업에 대한 이름을 짓고 나니 스스로 경건한 마음이 되는 것은 어쩐 일일까? 이곳은 자주 곰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니, 단군 신화에 이입시켜 태백산 천제단을 다시 이곳에 쌓는다는 가정도 글의 문맥을 풍요롭게 하는 멋진 상상이 될 듯하다.


주변에 어둠이 내리고 숲이 잠에 빠져들 즈음, 나무 사이로 어렴풋이 산등성이의 윤곽이 우아한 곡선을 그려 가고, 해거름의 오묘하고 미묘한 빛이 숲에 내려앉으면, 나는 어느 선방에서 가부좌를 튼 참스님의 모습을 떠 올리며 그 상상의 모습에 나를 이입시킨다. 감히, 얼토당토 하지 않는 상상이지만 해탈을 하시는 큰 스님들의 산방에서의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잠시나마 고요한 산속의 분위기에 몰입되어 해탈 흉내를 잠시 해본다.


드디어 돌화덕에 불을 점화해 보기로 했다. 내가 작은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 주신 이웃 형님께 고기 구워 먹으러 가자고 꼬드겨 스테이크 재료를 사들고 돌화덕이 있는 나의 숲으로 향했다. 화덕 아궁이에 장작을 재고 불을 붙이고 화덕 꼭대기 쇠판 위에 스테이크를 올리고 소금 간하고 시간을 기다렸다. 성능이 괜찮다. 내가 기대하는 이상이다. 화덕 높이가 있으니 기름이 떨어져도 고기에 불이 붙지 않고, 화덕 아궁이의 뜨거운 열기가 고기를 굽고, 그리고 불냄새까지 곁들여 전문 화덕 스테이크 집의 맛 못지않다.  준비해 간 사케와 더불어 주거니 받거니 정을 나누며 저무는 하루를 함께 한다. 그리고 이 나이에 또 한 가지를 깨닫는다.

‘ 산다는 것은 소소한 일상 중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리고 행복을 찾는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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