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타파_20]
https://www.youtube.com/watch?v=4IcC87Ma80E
요즘 목사들 설교를 들어보면 천국 가는 것을 너무너무 쉽게 설교를 해요. 천국 가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데 왜 이렇게 목사님들이 천국 가는 것을 이렇게 쉽게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나 이거는 복음이 아니고 이거는 예수님 말씀이 아닌데 왜 이렇게들 설교를 할까? 물론 성도들에게 희망을 주고 비전을 제시하는 건 좋지. 즉 쉽게 말하면 성도들이 부담 안 갖는 설교 성도들이 들었을 적에 아주 편안한 설교 이걸 성도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목사들은 그렇게 설교를 하는데, 우리 예수님이 3년 동안 설교하신 그 설교의 내용을 보면은 사람의 비유를 맞추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설교는 단 한마디도 안 오셨어요. 바울 역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왜 요즘에 와서 이렇게 설교가 목사님들의 설교가 왜 이렇게 바꿔졌을까 왜 이렇게 변화됐을까 왜 이렇게 변질이 될까 참 안타까워요. 그러게 목사님들의 설교가 천국 가는 것을 쉽게 설교를 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천국 가기 참 쉽다. 그렇게 쉽게 생각한다 이거죠. 이거는 아니다. 이건 주님이 원하시는 설교도 아니고 그렇게 성도들에게 설교를 해서도 안 되고 또 성도들이 그렇게 믿음 생활해서도 안 됩니다. 너무 세상적이고 너무 세속적이에요. 너무너무 세상적이에요. 목사들이나 성도들에겐 바울이 이야기한 대로 예수의 냄새가 나질 않아요. 천국의 냄새가 나질 않아요. 말씀의 냄새가 나질 않아요. 거룩한 성도의 냄새가 나질 않아요. 너무 세속적이에요. 야고보 4장 4절을 보면 우리 주님 말씀하신 게 있어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걸 너희가 알지 못하냐 그냥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예배 생활하고 믿음 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래도 천국 간다고 하니깐 성도들은 그렇게 믿으면서 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성경을 보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나는 내 집에서 심판한다. 그리고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사도요에가 보여주시었죠.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너는 성경과 재단과 역이에요. 재단이 성도는 역이에요. 세 가지예요. 교회 심판 목사 심판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할지어다. 목사적 심판이에요. 그 교회가 영적인 교회냐 육적인 교회냐 살아있는 교회냐 죽어 있는 교회냐 그 안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측량하라 왜 쭉정이가 있거든요. 오늘 본문의 말씀 같은 이런 성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말씀을 떠나서 믿음을 떠나서 그러니까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과 헛대고 세상에 속하고 예수님보다 돈 더 사랑하고 돈을 돈에 마음 주고 마음 뺏기고 돈에 놓여야 되고 그렇기 때문 돈 때문에 끌려가고 이런 성도들에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말씀을 떠나고 주님을 떠나고 믿음을 떠나서 당신 양심이 틀려먹었다.
이게 내 말이 아니야 바울 사도가 이야기한 거예요. 여러분 지금 이야기한 대로 우리는 양심이 있죠. 그러면 예수님 믿고 믿음 생활한다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 속하고 세상과 벗이 되고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그 양심이 가책을 받을 거 아니에요 이게 없다 이거야 이게 그러니까 양심이 무너져버린 거예요. 믿음이 무너진 게 아니라 양심이 무너져버렸어요. 아니 양심이 발효되지 않은 사람이 믿음 생활 바로 하겠어요. 양심이 삐뚤어졌단 말이에요. 그 믿음 생활을 하면 양심이 삐떨어진 사람이 바로 돼야 될 텐데 교회를 나가고 믿음 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양심이 삐딱해요. 이런 사람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들림 받고 천국을 갑니까? 그래서 지금 내가 이 이야기가 그거예요. 믿음을 떠나자 말씀도 떠나자 이걸 떠나서 우리 양심으로 한번 이야기해보자. 당신이 이러이런 일을 하면서도 나쁜 일을 하면서도 당신 양심에 가책이 없냐? 가책이 없으면 바울이 이야기한 것이 화인 맞은 거예요. 양심이 화인 맞으면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가 잘못을 했으면서도 깨닫지 못해. 내가 수천 번 이야기한 게 그겁니다. 은혜 중에 가장 귀한 은혜는 깨닫는 은혜인데, 아멘이에요. 내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시고 내 마음속에 은혜가 있고 내 마음속에 부드러운 마음이 되면은 내가 조금 주님의 영광을 바로 느끼게 됩니다. 내가 이걸 잘못했구나. 근데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이걸 깨닫지 못하는 거야. 이걸. 그러니까 믿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죄 짓고 말씀 거역하고 말씀 멸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 믿음 생활을 하면서 깨닫지 못하니깐 회개가 없는 거예요. 회개가 없어요. 그러니까 회개는 깨달음에서 오고 깨닫게 얻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책망받을 때에, 권면받을 때에 훈계할 때에 내가 이렇구나 이걸 깨달아야 될 텐데 믿음도 떨어졌죠. 양심도 과인 맞았죠 양심도 떨어졌죠 양심도 깨졌죠. 결론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디드서 1장 15절 16절을 보면 너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졌다. 저희가 하나님은 시인 하나 이게 뭐냐 교회는 나간다 이거지 하나님 계셔 이거다 이거예요. 예 하나님은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하나님 계셔 예수님 계셔. 근데 행위는 완전히 부인하는 거야. 이걸로 여기서 부인이 뭐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지 생각대로 믿음 생활을 하는 거예요. 이거는 정말 불행해져요. 그리고 하는 말이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그러니까 겉과 속이 틀리다 이거지 이게 양심이 더러워졌다고 그랬잖아요. 너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졌다.
너는 가증한 자다. 디모데전서 4장 2절을 보면 너의 양심이 화인 맞았다. 감각이 없어요. 우리가 성경대로 보면 사람이 나를 때려도 아플 줄을 몰라요. 나를 상하게 해도 감각이 없어요. 사도행전 23장 1절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잘 이해가 가죠. 믿음을 떠난 거예요. 믿음을 떠나서 나는 내 양심껏 지금 살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양심껏 사역하고 있다. 나는 내 양심껏 지금 믿음 생활하고 있다 이거예요. 또 24장 16절을 보면 바울은 또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항상 양심에 거리끼는 자가 되지 마라. 디모데전서 1장 5절을 보면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을 가져라.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선한 양심을 가져라. 천국 가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목사님들이 너무 쉽게 설교를 하는데,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한번 들어보면 마태 16장 24절 나를 따라오려거든 그러니까 나이 든 곳에 오려거든 바로 이거거든요.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를 부인해라. 이게 참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쉬운 거거든요. 나를 내려놔야 돼요. 그 잘난 척 하는 거 그 교만 그 자기 고집 좀 배웠다는 거 지금 나는 목사야 나는 뭐 장로 권사야 나는 뭐 신학 박사야 이런 거 주님은 이걸 내려놓으시라고 그랬어요.
너를 부인해라. 그게 나만 장군이고 히스기야 왕이야. 완전히 왕의 조박을 다 벗어버려요. 자기를 내려놓은 거예요. 자기를 포기해 자기를 부인하는 거예요. 근데 요즘 세상 어디 그렇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내가 천국 가기를 원하고 나 있는 곳에 있기를 원하면 너 내려놔라. 너 잘난 척하는 거 잘 믿지도 못하면 잘 믿는 척하는 거 다 내려놔라. 그리고 너에게 십자가가 있어. 니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어. 그거 줘라. 바로 이 자체가 뭐냐 그러면 십자가의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고난입니다. 환란입니다. 어려움이에요. 보세요. 천국 가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듭니까? 고난의 길인데 마태 5장 10절을 보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이게 뭐냐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는 핍박을 받아요. 근데 지금 누가 핍박을 받으면서 믿음 생활하고 누가 핍박받으면서 예배 생활을 하려고 합니까? 의를 위하여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뭐라고 천국이 니 것이다 이렇게 했어요. 지금 의를 위해서 믿음 생활하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는 복되다. 너는 틀림없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요. 얼마나 지금 자유스러워요. 마음껏 예배하고 마음껏 기도하고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이러한 귀한 자유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자유를 주님 위해서 써야지 아멘인가요? 놀러 갈 때 다 놀러 가고, 구경할 때 다 구경하고 바람 쐬러 갈 때 다 바람 쐬고 왜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 왜 그렇게 인색한가요? 양심의 가책 받아야죠. 아멘이에요.
디모데 후서 3장 12절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 경건하게 사는 건 절제하는 생활이에요. 세상과 짝하지 않고 세상이 오염되지 않고 세상과 헛되지 않고 이렇게 살아가는 생활이 경건의 생활이에요. 고통 시편 118편 5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믿음 생활 제대로 하려니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니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아. 지금 이 말씀은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믿음 생활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는 자. 이런 성도는 믿음의 성도입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주님이 나의 고통을 들으셨다. 너무 힘들어요. 경건한 생활을 하려니 믿음의 종교를 지키면서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니 너무 힘들어. 너무 고통스러워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으니, 믿음 생활하고 신앙생활하면서 세상과 벗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거고 1편 당신 십자가만 바라보고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들어 우리 주위에는 보함직스러운 거, 먹음직스러운 거 지혜롭게 탐색 얼마나 많아요. 정말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아요. 이걸 절제하는 게 경건의 생활이거든. 이렇게 사랑하는 자는 주님이 대우해 주시죠. 응 야 너 힘들었구나. 얼마나 주님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은 자.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고통을 당한 자 하고 싶은 거 하지 않고 절제하고 경건히 생활을 하면서 하고 싶은 거 안 하고 그냥 믿음대로 살아가려고 그 모습을 주님이 보셨을 텐데 언젠가는 우리가 장막이 문을 짓는 날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될 텐데 바울은 천국 가기가 이렇게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고린도후서 6장 5절 매맞음 옥에 갇힌 자지 못함. 그리고 먹지 못함. 내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 태창으로 막고 돌로 막고 일주야를 일주하여 일주일을 기품에서 지냈으며 줄이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믿음의 정절을 지켰어요. 끝까지 십자가 붙잡고 예수님 붙잡고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견디게 된 것은 딱 하나. 천국 주님 있는데 갈 거다. 언젠가 이 세상 떠나면 주님한테 갈 거다. 이것이 없었으면 이런 소망이 없었으면 누가 순교를 당합니까? 여러분 순교자들은 천국 가기 위해서, 믿음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목이 잘렸어요.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게 믿음 생활하면서 그렇게 엉터리 믿음 생활해요. 조금 피곤하다고 안 나오고 뭐 바쁘다고 안 나오고 뭐 뭐 어렵다고 안 나오고 뭐 이렇다고 안 나오고 여러분들에게 내가 묻고 싶어요. 믿음 생활하면서 매맞아 봤느냐 머리채 한번 누구한테 잡혀봤냐 고통을 한번 당해봤냐 핍박을 한번 당해봤냐 한번 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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