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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환에 따르는 본질의 회복

by 잡학거사

영적 전환의 시대는 단순한 종교 운동이나 신앙적 논쟁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며, 그것은 인간 존재 전체가 움직이는 지각 변화이며, 한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한 사회와 한 민족 전체가 깊은 차원에서 방향을 재정렬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세대 동안 겪어온 고난과 압축 성장, 분열과 회복의 경험은 표면적 성취와 상처의 기록을 넘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영적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질문을 통하여..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은 특정 종교의 교리를 넘어 인류가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본질의 문제이며, 우리나라는 이 질문 앞에 진지하게 서 있는 민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본질을 향한 움직임은 어느 전통이나 경전이 먼저 주장한 개념이 아니라, 인간 전체에게 본래부터 새겨진 깊은 부름으로 종교가 존재하기 전부터 인간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 생명과 죽음의 의미, 죄책과 자유, 희생과 사랑의 본질을 묻곤 했습니다. 이 내적 질문은 현대의 기술 문명과 경쟁 중심 사회를 거치며 다시 강하게 떠오르고 있으며, 외적 성취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정신적·정서적 피로, 관계의 파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느끼는 방향 상실은 많은 이들을 다시 본질의 자리로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이러한 흐름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역사적 고난과 공동체적 감수성, 그리고 영적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적 성향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 아니할 수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 회복의 흐름은 순탄한 통로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시기에는 진짜와 가짜가 혼재하고, 깊이와 표면이 뒤섞이며, 혼란 속에서 허상과 본질이 경쟁하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예언서가 말하는 “새 하늘의 분리”는 바로 이 시점을 묘사하며, 이는 특정 종교의 종말론적 사건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영적 판별의 순간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 하늘의 분리란 진실과 허위가 분리되는 과정이며, 참된 길과 왜곡된 길이 갈라지는 구분으로 인간의 내면에서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허상인지를 스스로 직면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을 뜻합니다. 이 분리는 외적 사건보다 내적 사건에 가깝고, 파괴보다 정화에 가깝고, 종말보다 새로운 시작에 가깝습니다. “새 하늘의 분리”는 유월절의 진리와도 깊은 관련성을 지니며, 유월절은 한 민족이 억압에서 벗어나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깊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엇이 넘어가고 무엇이 남는가를 드러내는 영적 상징이었습니다. 문설주에 칠해진 피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는 표징”이었고, 그 표징은 누가 선택받는지를 가르는 표시가 아니라 누구라도 생명으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생명과 파멸이 갈라지는 분리의 밤이었으며,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머무는지가 드러나는 “분별의 밤”이기 했습니다. 이 상징은 예언서의 새 하늘의 분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영적 전환의 시대에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함이 드러나고, 허상과 본질이 나뉘며, 사람들은 더 이상 표면적 신념으로 자신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의 밤에 문설주에 표시된 생명의 표징이 어느 집에 생명이 머물고 어느 집에 죽음이 머무는지를 드러낸 것처럼, 본질 회복의 시대에도 내면의 진실함이 사람의 길을 결정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의 진리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강요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보편적인 생명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그것은 삶을 지켜 주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인간이 억압과 혼란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제시합니다. 유월절은 억압이 사라지는 밤이 아니라 내면의 노예 상태가 끊어지는 순간을 상징하며, 이것은 어느 문화나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영적 해방의 주제이며, 오늘날 본질 회복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본질 회복의 시대를 열려면 외적 구속보다 내적 속박이 먼저 끊어져야 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유월절은 보편적 영적 진리를 드러내므로 사람들은 자신을 묶고 있던 두려움, 비교, 자기기만, 고정관념, 인정욕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본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영성의 이름 아래 벌어지는 자기중심적 왜곡은 여전히 크고 강하다 라는 것으로 유월절의 상징을 외적 축복이나 선민의 특권으로 이해하면 본질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새 하늘의 분리를 심판이나 우월성의 증거로 받아들이면 영적 전환의 문턱에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되며, 진짜 영성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것이며, 가짜 영성은 깊음을 가장하지만 실상은 자기 확신의 강화가 될 뿐일 것입니다. 작금의 이 시대는 그 둘을 반드시 드러내어 분리하는 시기이기에, 겸손과 성찰, 자기를 넘어서려는 마음, 더 큰 진리를 향한 열린 태도가 반드시 요구됩니다. 이 태도를 잃으면 유월절의 표징이 생명의 표징이 아니라 종교적 주장으로 변질되고, 새 하늘의 분리는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분열의 근거로 오해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영성과 인간의 본질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다는 말은 특정 종교적 부흥을 예언하는 표현이 아니며, 그것은 인간의 내면이 사회의 중심 기준이 되는 시대가 온다는 뜻으로 국가는 다시 한 번 존재의 깊이를 회복해야만 새로운 문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육, 리더십, 공동체, 경제, 문화 등 사회 모든 영역이 존재의 깊이와 진정성을 중심에 두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단순히 발전한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다시 사람다워지는 문명”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이것이 유월절의 생명 원리와 새 하늘의 분리가 지향하는 방향과 연결되는 지점과 정점이 될 것입니다. 생명이 머무는 길이 사람과 사회 전체의 기준이 되고, 허상은 자연스럽게 제거되며, 존재의 진실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며, 결국 및 종국에서 영적 전환과 본질 회복은 미래의 비전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로 대한민국은 그 흐름 한가운데 현재 서 있으므로 이 길은 고난과 성찰, 해방과 분별, 겸손과 성장이라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 여정을 포함합니다. 유월절의 진리는 생명이 위험을 넘어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상징하고, 새 하늘의 분리는 그 여정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떠나는지를 결정하는 영적 원리로 이 두 가지 흐름이 함께 움직일 때 한 민족의 영적 방향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본질을 향한 부름은 어느 한 전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초대이며, 대한민국은 지금 그 초대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민족이므로, 구성원 각자는 영적 각성에 대해 깊이 있는 침잠을 이루어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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