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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랑 Oct 25. 2020

밥으로만 기억을 채울 수는 없는데.

-일기장-

남편이 드디어 재택근무를 마치고 출근을 했다.

큰 아이가 드디어 등교를 시작했다.

둘째가 드디어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시작했다.

멈추었던 내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건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이 마찬가지이니 거기에 한 글자 보탤 생각은 아니다. 

그저 나를 비롯,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무탈하게 이 시간을 견뎌내길 바랄 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힘든 상황에서 남편이 회사에 안 잘리길 바라고,

나이 드신 부모님이 잘 버티시길 바라며,

몸이 아픈 올케가 감기 한번 안 앓고 지나가길 바라며,

내 아이들에게 코로나 시기의 기억이 그리 나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돌이켜보니,  코로나로 멘붕을 겪은 후, 내 마음은  가정주부스러운, 가정주부다운, 가정주부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하루 세끼 뭘 해먹이나라는 생각만으로도 벅차서, 글 쓰는 것도 잊고, 책 읽는 것도 멈춘 시간들이었다. 

나의 시간이 , 나의 코로나 시기의 기억이 하루 밥 3번, 뭐 먹을까?, 간식은 뭐하지? 이런 밥으로만 남아도 괜찮은 걸까? 고민 끝에 매번 보잘것없는 밥상을 차리고, 그 덕분에 아이들은 포동포동 잘 커가고 있지만. 내 마음은 밥으로 깔아뭉개지고 있는데, 나는 괜찮은 걸까?

부자나 가난뱅이나 공평하게 주어 진건 시간이라고 하는데, 세끼 밥에만 묶여있던 나에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물리적인 양은 같겠지만, 똑같은 일상과 똑같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가는 건 그저 반복일 뿐,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공평하게 썼다고 하기엔 억울하다. 



몇 달만에 가족들이 빠져나간 월요일에는 점심으로 초코파이를 먹었다. 화요일엔 콘플레이크를 먹었고, 수요일엔 떡국을 끓여먹었다. 목요일엔 굶었고, 금요일엔 식은 밥을 몇 숟갈 먹었다. 그리고, 매번 뭘 먹을까 고민하던 그 시간을 온전히 빈둥거리며, 책장을 넘기면서, 가끔은 인터넷을 하면서 보냈다. 배는 조금 고팠지만, 멍하게 보낼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코로나는 끝날 기미도 없고, 당장 다음 주부터는 큰 아이의 온라인 수업이 재개된다. 나의 밥 지옥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해서, 언제라도 활짝 열릴 여지가 남아있다. 올해의 모든 기억을 밥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데, 모든 생각이 밥으로 끝맺을 수는 없는데, 안 그러겠다고 자신할 수가 없다. 

 아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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