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 Day2 11.14.2023
새벽녘 호텔방 문을 여니 사막의 아침공기가 차갑다. 오늘 출사지는 Zion Canyon국립공원이다. 수많은 후두들이 제각기 멋을 내며 솟아있는 브라이스 캐년이 화려한 여성을 닮았다면 웅장한 바위산으로 싸인 자이언 캐년은 우람한 근육을 가진 남성을 닮았다.
오늘은 두 그룹으로 나눠 촬영하기로 했다. 한 그룹은 오버룩을 트레킹해 올라가 자이언 계곡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찍고 한 그룹은 비지터센터에서 셔틀을 타고 Pa'rus trail을 거쳐 the narrow까지 Virgin river를 따라가기로 했다.
오버룩 트레일은 경사진 바위를 올라야 하기에 지원자가 적었다. 혹여 다칠까 염려한 가이드가 오버룩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지원자는 7명으로 축소되었다. 평소 씩씩한 선배들인데도 나이 듦이 과한 용기를 내려놓게 하는지 포기하는 분이 많았다.
버스는 자이언 비지터 센터에 계곡 촬영팀을 내려주고 오버룩으로 향하는 7명만 태우고 9번 하이웨이인 Zion-Mount Carmel highway를 따라 올라갔다.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 자이언의 장엄함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곳곳에 나타나는 신의 걸작품들이 경탄을 자아냈다. 하늘로 솟은 현무암 바위가 사방을 에워싸 마치 고딕의 대성당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바위산을 오르자 버스 안에서 헨델의 알렐루야가 울려 나왔다. 대성당을 가득 채우던 헨델의 메시아 합창곡 알렐루야, 영혼까지 울리던 그 웅장한 합창곡이 자이언의 바위를 타고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하느님의 위대함에 인간이 바치는 찬양의 노래가 약속의 땅 자이언(시온)에 퍼졌다. 언젠가 이 자이언 계곡을 배경으로 음악회를 하면 어떨까 상상하며 산을 향해 올랐다.
카멀터널을 지나는 것이 절정이었다. 카멀터널은 거대한 현무암 바위산을 관통한다. 이 대단한 공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인간의 기술에 혀를 내둘렀다. 터널 중간중간에 바깥경치가 엿보이는 바위창을 뚫어놓은 게 신의 한 수다. 캄캄한 굴을 지나다 빛이 스며드는 창으로 자이언 계곡의 바깥 경치가 1초 광고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애써보았지만 번번이 놓쳤다. 찰나로 스치는 장면이 궁금증을 더했다. 바위창을 세 번째 지날 즈음에야 카메라 세팅에 제법 익숙해져 다음번엔 놓치지 않으리라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니 이내 출구가 나와 버렸다.
자이언 마운트 카멀터널은 1927년에서 1930년 사이 바위산을 뚫어 차량이 지날 수 있게 만든 터널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심각한 경제 위기였던 대공항 시기에 건설되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대공항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회복을 시도했다. 콜로라도 강에 건설된 후버댐과 뉴욕의 맨해튼- 퀸즈- 브롱스를 연결하는 트리버러 브리지, 텍사스 주 샌 안토니오의 인공 강인 샌 안토니오 리버 워크,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 자이언 캐년 국립공원 내 자이언 마운트 카멀터널 등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경제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오버룩 트레일 헤드는 자이언 캐년 웨스트입구에서 갈 경우 카멀터널을 빠져나온 즉시 나오기 때문에 자칫하면 놓치기 쉬웠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파킹하고 길을 건너야 했다. 7인의 독수리부대는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에 트라이팟까지 둘러메고 나섰다. 히말라야 정복이라도 나선 듯 자못 비장한 모습이다.
오버룩 트레일 헤드 초입에 가파른 계단을 5분 정도 오르니 완만한 산길이 이어졌다. 바위산 아래 펼쳐지는 계곡을 천천히 감상할 새 없이 쉼 없이 올랐다. 트레일의 반 정도 지점에 큰 굴을 만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아래로 깊은 계곡이 아찔하다. 우리가 지나온 카멀터널은 멀리서 간간히 차를 뱉어내고 있었다.
바위언덕을 넘어서 오버룩 정상에 이르자 아래로 광대하게 펼쳐지는 자이언 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치솟은 높이만큼이나 깊어진 계곡, 서로 이웃하던 바위가 하늘과 땅으로 멀어지며 그리워도 이젠 손 닿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바위에 근근이 뿌리를 대고 하늘로 팔을 펼친 나무들, 약속의 땅 자이언을 향하며 기도하던 모세를 닮았다.
계곡에 깊이 내려앉은 가을이 겨울을 부르고 있다. 까마득히 발아래로 숨 가삐 올라오던 도로가 굽이굽이 실낱처럼 이어져 반짝인다. 고운 가르마 같은 그 길을 따라 버스와 차량들이 개미 행렬처럼 오르내린다. 찬란한 햇살이 바위로 쏟아져 붉은빛을 더했다.
이곳은 바다였던 땅이 융기하고 침강하면서 생긴 지형이라 한다. 누워있는 바위엔 물결이 할퀴고 간 자위가 선명하다. 바다가 산이 되고 산이 바다가 되며 요동치던 지구의 카오스 시대엔 어떤 생명체가 있었을까. 천지가 뒤바뀌던 그때 산을 오르던 공룡이 바다를 헤엄치고 바다를 유영하던 고래가 산을 올랐을까.
억겁의 시간도 돌고 돌아 땅이 바다 되고 그 바다가 다시 땅이 됨을, 인간 삶의 역사도 윤회되는 시간의 궤적일 뿐임을 바위는 제 몸에 새겨진 문신 같은 상처로 알려준다.
무게 때문에 200미리 줌렌즈를 두고 온 걸 후회했다. 그러나 덕분에 눈으로 먼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깨닫는 건 인간이 만든 렌즈가 아직 신이 만든 렌즈인 인간의 눈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거다. 카메라 세팅에서 적절한 노출값의 기준은 눈이 보는 노출이다. 끊임없이 신의 창조물에 근접하려 도전하는 인간은 언젠가 신이 될 것인가. 어쩌면 신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은 본향의 자리가 그리워 끝없이 정진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려오는 길에 야생의 염소를 만났다. 피할 곳 없는 좁은 길에서 마주친 염소는 한동안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 속에서 선계를 보았다.
자이언빌리지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과 햄버거로 사진등반 후 여담을 풀어내고 선셋사진 촬영을 위해 버진 리버 위 브리지로 향했다. 떠나는 해는 자이언의 봉우리마다 작별을 고하는 중이었다. 마이더스의 손이 닿는 곳마다 세상은 황금으로 변해갔다. 버진리버를 따라 금빛 가을이 흐르고 있었다. 거대한 자이언이 카메라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KOAM 사진동아리 수지로 작가 / 이정필 작가 사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