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롬 Oct 15. 2024

노인과 원고지

노인과 바다 새삼 다시 읽기

 어린 시절 어머니가 고전 소설 문고본 예닐곱 권을 사온 적이 있다. 대부분 맨 앞 열댓쪽 정도 뒤적여보다가 쳐박혀 먼지만 뒤집어 쓰다가 이사갈 때 쯤 버려지는 운명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나마 끝까지 읽기는 했던 작품이 몇 개 있다. 아마도 어린 왕자, 레미제라블, 그리고 노인과 바다였을 게다.


 지금이라면 엄두도 낼수 없을 살인적인 인내력으로 노인과 바다를 독파해낸 여덟아홉살 남짓의 나는 허망함과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이게 뭐야? 결국은 참치는 대가리만 남은 거잖아. 그것이 나와, 내가 태어나기도 전 수십 년 전에 자기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어버린 대문호의 첫 만남이었다.


 두번째 만남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난 그 사이에 글 써서 먹고 살아보자는 다시 돌아간다면 하지 않을 결심을 한 참이었다. 글을 써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쩐지 고전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대부분 끔찍하게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하루는 우연히 서점에서 노인과 바다를 주어들었다. 기억보다 훨씬 분량이 많았다. 그제야, 어릴 때 읽었던 것이 어린이용 축약본이었음을 알았다.


 흔히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명성이 알고보니 다 헛것인 것 같다는, 돌이켜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오만한 생각에 젖어있던 나는 큰 수혜라는 베푼다는 듯이 그 책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선 자리에서 그대로, 마지막 장까지 독파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영혼이 뒤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노인과 바다는 거의 항상 내 책장 첫번째 칸에 꽂혀있다. 때때로 자리가 없어서 두번째 칸으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으레 몇 달 안에 자기 자리를 되찾곤 한다. 유년의 작가가 한 번 씩을 앓는다고 하는 문학에 대한 열병을 나 또한 앓았을 때, 그 주된 병인을 노인과 바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수십 번을 반복해 읽으며 그 때마다 다르게 해석해보려 하지만, 역시나 내가 가장 선호하는 해석은 창작자와 창작행위에 대한 은유로 보는 것이다. 즉 노인은 노작가이고, 바다에서의 낚시는 창작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한때 영광을 누리던 노문호는 84일이나 글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있다. 주변인들은 그가 드디어 모든 창작의 연료를 소진했으며, 이제 은퇴만을 앞두고 있다고 판단한다. 노인은 개의치 않고, 날마다 정해진 시간 책상 위에 원고지를 펼쳐놓고 하루종일 그 백지의 고통을 감내하는 중이다.


 노인 외에 그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이는 소년 뿐이다. 소년은 할 수 있는 한 노인을 돕고 싶지만, 그 또한 이제 문하생이나 제자가 아닌 어엿한 한 사람의 작가이다. 노인은 소년의 마음을 알고 또한 고마워하며 깊은 애정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혼자 해내야 하는 일임을 알기에, 85일째 새벽 다시 바다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무의식의 심연으로 홀로 떠난다.


 지난 84일간의 불운은 노인을 기죽게하지 않는다. 전에 어떤 일이 있었다 한들, 날마다 새로운 날 아니겠는가. 그토록 긴 고통의 시간에도 노인은 여전히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 또한 노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마침내, 85일만에 노인은 고기를 낚는다. 생애 단 한 번도, 노인 외의 누구도 본 적도 낚아본 적도 없는 거대한 고기이다. 낚싯줄을 문 고기에게 무려 사흘 낮 사흘 밤을 끌려간 끝에, 노인은 마침내 고기를 죽여 건져낸다. 그 동안 노인은 고기에게 동정을, 애정을, 심지어 동질감을 느끼며, 바로 그렇기에 마침내 고기를 잡고야 만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니다. 무의식의 심연에서 낚아낸 것을 전하기 위해선 반드시 언어화가 필요하다. 자신보다도 큰 거대한 고기를 묶어낸 조각배를 몰고 항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다. 고기를 죽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 심장에 작살을 꽂아넣어야 했고, 그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들이 호시탐탐 고기의 살점을, 심지어 노인 자신을 노리고 있다.


 결국 노인은 고향 항구로 돌아온다. 고기는 살점을 모두 잃고 하얀 뼈만 남았다. 노인은 개의치 않는다. 그는 이미 자기자신을 증명했고, 고기의 살점이 남아있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조차도 제대로 이해받지는 못한다. 항구의 관광객은 고기의 뼈를 보고 상어로 오해하며, 상어가 저토록 날씬하고 아름다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며 호들갑스럽게 감탄한다.


 노인은 듣지 못했지만, 들었다 한들 마음쓰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은 그저 늘 그랬듯 사자꿈을 꾼다. 태풍은 사흘쯤 이어질 것이다. 이후, 노인은 다시 한 번 바다로, 하얗게 펼쳐진 가없는 원고지의 세계로 다시 한 번 떠날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귀로 듣는 노인과 바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nwNoo369sD7Yecf3Bwjz0nBW5f26YjhD&si=4gMN58AmhvZ2eS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