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ai
벤티스퀘로 콜간테는 황금으로 빚어낸 미의 화신 같았다. 정교하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으로 감싼 거대한 머리통과 사자처럼 으근으근하게 울리는 목소리, 접시만큼이나 푸짐하게 벌어진 콧구멍과 같은 다양한 매력을 한몸에 가지고 있었다. 보는 이들은 누구라도 숨이 멎었고 때때로 영영 다시 숨을 쉬지 못하기도 했다. 그 거대한 콧구멍에 시선이 머무는 순간, 으레 뭇 남성들의 마음은 남김없이 쓸려가고 말았다. 당사자들이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말이다.
벤티스퀘로는 결코 일할 필요가 없었다. 나라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저택의 유지 보수를 비롯한 모든 것은 전국 남성들의 자발적인 노동으로 유지되었다. 그녀의 생활비는 'GNF(Golden Nostril Foundation)'이 주도하는 기금 조성으로 충당되었다. 민주화 운동의 성공 이후, 특권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기부 기회는 이제 매달 복권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렸다. 천문학적 확률을 뚫은 소수의 행운아들은 그녀의 화장품과 최신 안마 의자, 스트레스 해소용 펀칭백 등을 기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실질적 여왕으로 군림했다. 의무는 없고, 권한만 있는.
그녀의 하인들 중, 화장품을 담당하는 하인들은 매주 세 명씩 선발되었다.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누구도 그녀의 화장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벤티스퀘로의 화장 시간은 늘 예측 불가능한 모험이었다. 어느 날, 한 하인은 파운데이션과 핫도그 소스를 헷갈리는 바람에 그녀의 얼굴은 마치 석양이 물든 겨자밭처럼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티스퀘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국제 낭비 미학제 무대에 우아하게 등장했다.
이미 시간 낭비, 자원 낭비, 에너지 낭비 부분의 3관왕이 예정되어 있던 그녀는 현장에서 긴급하게 만들어낸 '화장품 낭비' 부분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혁신적'인 메이크업에 열광했고, 그녀의 얼굴은 전 세계 미디어에 대서특필되었다. 곧 패션계가 이 미친 트렌드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소스 메이크업'이라 불리며 케첩, 머스타드, 돈까스 소스와 마요네즈까지 각종 소스를 사용한 메이크업이 유행을 탔다. 그녀의 화장 방식은 곧 식품업계와 협업으로 이어졌고, 벤티스퀘로는 자신의 얼굴로 광고된 소스를 출시하여 대성공을 거뒀다. GNF의 재정은 한층 더 견고해졌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철학, 예술 등 모든 분야가 벤티스퀘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에서, 단 한 사람만이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로 요롱 쇼다라두였다. 벤티스퀘로의 눈부신 외모나 그녀를 기리는 축제에는 눈꼽만큼의 흥미도 없었다. 요롱의 세계는 전적으로 그의 핫도그 가게와 소시지의 퀄리티에 달려 있었다. 벤티스퀘로의 사포처럼 매끈한 피부나 철근 콘크리트 같은 머리 스타일보다, 신선한 소시지를 한입 물었을 때 터져 나오는 육즙, 탱글탱글한 소시지의 완벽한 탄력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의 유일한 고민은 핫도그에 어떻게 새로운 소시지를 넣어 최고의 한입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벤티스퀘로가 아닌, 빵 사이에 완벽히 끼워진 소시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벤티스퀘로는 요롱의 핫도그 가게에 방문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요롱에 대한 소문은 이미 그녀의 귀에 들어갔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남자라니. 최근들어 무료함과 따분함, 권태만 느껴오던 벤티스퀘로는 오랜만에 흥미를 느꼈다. 그녀는 요롱 또한 자신의 그물에 넣어보기로 결심했다.
벤티스퀘로는 천천히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요롱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매혹적인 콧구멍에 머물렀다. 소시지를 굽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벤티스퀘로는 부드럽게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살짝 기울여 요롱에게 윙크를 보냈다. 일반적인 윙크와는 차원이 다른 매력을 뿜는다는 것, 그리고 눈커풀 대신 콧구멍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요롱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릴에 손을 데이고 말았다. 깜짝 놀란 요롱은 반사적으로 그릴을 밀쳐냈고, 그릴은 그대로 뒤집어졌다. 공중으로 튀어오른 소시지들이 마치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요롱은 소시지를 구해내려 손을 뻗었지만, 너무 뜨거워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소시지를 손바닥으로 쳐내며 저글링을 구사했고, 뜨거운 소시지들이 계속해서 튀어 올랐다. 그 와중에 요롱의 손을 빗겨간 소시지 하나가 다시 그릴 위로 떨어졌다. 나머지는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들은 오늘 요롱의 저녁 식사가 될 운명이었다.
벤티스퀘로는 천장의 석고보드 틈새에서 파스스 먼지가 떨어질만큼 우렁차게 웃었다. 그러나 단순히 요롱의 실수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시지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고, 마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듯한 감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벤티스퀘로는 천난만고 끝에 완성된 단 하나의 핫도그를 베어 물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풍미에 순간 말을 잃었다. 요롱의 핫도그는 이미 질릴대로 질린 어떤 호화로운 만찬보다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해 왔는지를 깨달았다.
물론 그녀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랬듯 그 감동 또한 5초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벤티스퀘로는 요롱에게 다시 한 번 콧구멍을 사용한 윙크로 값을 치르고, 그대로 자신의 대저택으로 돌아갔다. 요롱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외상장부를 꺼내 벤티스퀘로의 이름을 적었다.
그날 밤, 요롱은 기이한 꿈을 꾸었다. 그는 벤티스퀘로와 함께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핫도그 배 위에 올라 있었다. 하늘에는 소시지 모양의 구름들이 둥둥 떠다니고, 그 아래에는 그들을 바라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벤티스퀘로는 요롱 옆에서 커다란 집게로 핫도그를 하늘 높이 날려보내고 있었다.
요롱은 배에 설치된 거대한 그릴 앞에서, 한 손으로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소시지를 굽고, 다른 손으로는 맞춤하게 갈라낸 핫도그 번에 소세지를 장착했다. 모든 사람들은 벤티스퀘로가 소스를 뿌린 뒤 던져준 핫도그를 받아 나눠 먹으며 기쁨에 찬 노래를 불렀다.
꿈에서 깰 무렵, 요롱은 자신이 벤티스퀘로와 소시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둘에 대한 사랑은 이미 따로 구분지을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겐 소시지가 곧 벤티스퀘로였고, 벤티스퀘로는 곧 소시지였다.
요롱의 사랑은 뜨겁게 무르익어갔다. 그의 소시지는 이제 모두가 아닌 오직 벤티스퀘로만을 위해 구워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벤티스퀘로에게 무관심한 유일한 남자였던 그는 이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열성팬이 되어있었다. 요롱이 보기에 벤티스퀘로 또한 분명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공개 석상에서 보이는 작은 몸짓과 별 것 아닌 추임새 하나하나가 바로 요롱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확신했다. 요롱은 자신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전달할 필요성을 느꼈다.
문제는 벤티스퀘로의 곁을 지키는 호위병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한 호위병이 아니었다. 그들은 섣부르게도 벤티스퀘로에게 직접 사랑을 고백하고 무참히 차인 남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가 안 된다면 너도 안 돼'라는 명제 아래, 다가오는 남자들을 무참히 폭행하거나 때로는 살해하기까지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들의 방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요롱의 첫번째 시도는 소시지를 엮어 만든 거대한 뗏목이었다. 그것을 타고 벤티스퀘로의 마음 속으로, 그러니까 그녀의 대저택 안으로 잠입할 작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항해가 될 터였다. 그러고보니 벤티스퀘로의 거대한 몸집이 모비딕을 연상시킨다는 것도 계획의 성공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 했다. 요롱은 이미 벤티스퀘로와 연인으로서 서로를 칭할 애칭까지 정했다. 모비딕, 이제부터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다오.
그러나 소시지 뗏목은 물론하게도 도무지 물 위에 띄울 수 없었다. 요롱이 핫도그 가게 정기 휴무일인 화요일을 거진 모두 사용해 정성껏 엮어낸 소시지는 물 밑으로 가라앉아 팅팅 불어버렸다. 건져낸 막대한 양의 소시지는 이후 이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요롱의 식사가 되었다.
물론 요롱은 그 정도로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두번째 시도는 물이 아닌 하늘에서 사랑을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핫도그 모양의 거대한 풍선을 제작해, 그것을 타고 벤티스퀘로의 대저택 위로 날아오를 계획을 세운 것이다. "나의 태양 벤티스퀘로, 나를 이카루스라 불러다오"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펄럭이며 벤티스퀘로를 향해 낭만적인 고백을 할 작정이었다.
안타깝게도 벤티스퀘로는 지독한 근시였다. 요롱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깃발을 펄럭였지만, 그녀는 멀리서 날아오르는 핫도그 모양의 풍선과 깃발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 내려올 수단을 마련해두지 않은 요롱은 해가 지고, 다시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공중에서 흩날렸다.
풍선에 매달려 잠들어버린 요롱은 눈꺼풀에 비치는 아침 햇살에 의해 깨어났다. 그는 어딘지도 모를 낯선 곳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당황하여 버둥거리던 요롱의 풍선이 나뭇가지에 걸려 터졌다. 그는 처참하게 구르며 경착륙 했다.
핫도그 가게에 돌아온 요롱은 며칠을 헤맸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옷은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머리카락엔 나뭇잎이 잔뜩 엉켜 있었다. 그러나 단골 손님 몇몇이 텐트를 치고 요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쉴 틈도 없이 그릴에 불을 붙여야 했다.
역시나, 불굴의 사내 요롱은 포기하지 않았다. 세번째 시도는 보다 신중한 고민 끝에 '보닛 태우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공익근무요원 시절 운전병으로 활약하며, 구청장과 여섯 명의 사람을 보닛 위에 태우고 118미터를 운전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후 운전병에서 해임되어 구내식당에서 설거지 담당하며 복무 기간을 마쳐야했지만, 천부적인 재능은 잊히지 않았다. 그는 벤티스퀘로를 보닛에 태워 한적한 곳으로 데려간 뒤, 그녀의 마음을 애태운 것에 대해 사과하며 진심 어린 사랑 고백을 할 계획이었다.
드디어 결행일, 요롱은 핫도그 모양으로 장식한 아버지의 영업용 택시를 몰고 벤티스퀘로의 대저택으로 향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저택에서 나오던 벤티스퀘로를 향해 황토색 택시가 돌진했다. 요롱은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엔진의 머플러를 제거했고, 그 굉음에 호위병들과 팬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실은 벤티스퀘로보다 목숨이 훨씬 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요롱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벤티스퀘로에게 돌진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요롱이 흥얼거린 노래는 다음과 같았다.
인상여의 벽옥 위에 양각으로 새기리
상아의 패물 위에 음각으로 새기리
가난한 내 심장에 문신으로 새기리
나 또한 그대를 사랑하오, 벤티스퀘로
SINCE 1987
이 즉흥시에 붙은 선율은 다양한 형태로 편곡되어 인형 눈깔을 부착할 때 부르는 노동요부터 국가 공식행사의 의전 음악까지 폭넓게 사용되어, 음악 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안타깝게도,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프로포즈를 받은 벤티스퀘로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요롱의 엑셀 조작 미숙으로, 벤티스퀘로는 보닛 위에 살짝 얹히는 대신 하늘 높이 치솟아 영원히 내려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패배를 승복한 하늘의 여신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34년마다 한 번씩 하늘에서 관측되는 쌍둥이 혜성, 콜간테 혜성과 쇼다라두 혜성은 아직도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한 벤티스퀘로와 그녀를 뒤쫓아 하늘로 솟구친 요롱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도 벤티스퀘로의 나라에서는 스무 살이 넘은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이 빠른 속도로 모는 차의 보닛에 올라타는 것이 성인식의 한 단계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은 내심 줄 없이 뛰는 번지점프가 더 안전하다고 여기나, 이를 입밖에 내는 것은 몰상식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