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주 Dec 06. 2021

지역사회에 자산을 더하기

모두를 위한 임팩트 비즈니스

임팩트 투자가 개발도상국 빈곤층에까지 사회 서비스를 확장하고 나아가 사회 정의를 넓히는 비즈니스를 견인한다고 하면, 빈곤층이 맡아야 하는 역할 또한 BOP시장의 소비자, 피고용인, 영세 자영업자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지점은 뽀족하게 짚어 논의되지 않는 것 같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원조와 자선의 한계를 넘어서는 비즈니스 접근'을 이야기할때, 그로 인한 국내총생산과 개별 가계 소득의 증가, 서비스 공급의 지속성과 소비 효용의 증가에 주목하는 반면,빈곤층이 장기적으로 자립하고 경제적으로 성장해갈 수 있는 자산과 자본의 형성에 대해서는 같은 정도로 열심히 말하지 않는다(임팩트 투자업에 있지 않은 내가 쉽게 찾을 정도로는 말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의사결정권, 기술과 자산의 소유권을 누가 갖는가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익숙한 이야기. 


개발도상국 오프그리드 농촌 지역에서 한 스타트업(혹은 사회적기업)이 가정용 태양광 발전 설비(솔라홈)를 공급한다. 이를 구입하는 가정은 등유 구입에 쓰는 지출을 줄이고 더 깨끗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전기를 쓸 수 있다. 이 기업은 신용이 없는 가난한 집도 물건을 살 수 있도록 $200 남짓한 제품을 소액 할부로 구매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빈곤 가정은 집 한 켠에 핸드폰 충전을 해주는 작은 사업을 열어 할부금을 벌 수도 있다.


여기서 발전하면, 개별 가계가 아닌 마을/지역 단위로 논의를 확장하게 된다. 태양광을 활용하는 마이크로그리드를 지역 단위로 모아서 짓고 에너지 저장장치(ESS)를 연계한다. 쓰고 남는 전력을 판매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 빈곤을 극복하고 빈곤층의 생활수준과 생계 활동을 향상하고, 나아가서는 지역 단위의 소득 창출 기회까지 만들어낸다. 


이것만으로도 괄목한 변화지만, 아직 짚어보지 않는 것도 있다.


빈곤한 사회는 외부 유입 자본을 해당 지역사회에서 자산화하기 어려운 제도적 제약을 안고 산다.  


마이크로그리드 설비를 세우기 위한 토지를 외부 프로젝트 기업에 헐값에 내준 것은 아닌가? 땅을 헐값에 내주고도 전력사용료를 꼬박꼬박 현금으로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설비 투자에 필요한 비용은 어떻게 조달되었는가? 가난한 지역사회의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지는 않았는가? 이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자산이 실제로 늘어났는가? 아니면 태양광 에너지를 쓰게 되면서 등유 구입에 비춰 가계 지출을 줄이는 정도의 혜택에 그친 것인가? 


임팩트 투자로 솔라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로컬 비즈니스를 키운다고 하면, 이때 회사의 소유 구조는 어떠한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고등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지역사회의 개인이나 단체가 해외 기관의 투자를 받는 것이 얼마나,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등등.


이 같은 관점에서 '임팩트 투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혹은 한계를 짚고 , 기회와 가능성을 확장하는 논의를 읽고 싶었던 반면, 임팩트 투자를 소개하는 대부분의 글은 '재정적 수익과 사회, 환경적 가치를 함께 고려한 투자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투자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어 아쉬웠다. 


오늘 읽은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모건 사이먼 지음, 김영경, 신지윤, 최나영 옮김, RHK)이 아쉬운 부분을 채워준다.  


임팩트 투자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떨어 뜨리고 사회 불평등을 악화하는 기존의 투자, 비즈니스 관행을 바로 잡겠다고 하면, 그것은 빈곤층을 소비자로 유입하고 포섭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 더 큰 꿈을 그려야 한다고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어, 반갑게 읽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기꺼이 구매하는 제품이라는 사실이 제품의 유용성을 입증했다고 본다면, 이러한 시장 기반의 해결책은 기부금보다 나은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마찬가지로, 점진적 변화를 통해 손쉬운 승리를 택하는 것은 끔찍하고 착취적인 과거의 대안보다 현재의 제안이 약간 더 낫다는 사실만 증명할 뿐이다. 시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변혁적 개입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본문 98쪽)


이런 문제인식에서 출발해, 임팩트 투자가 낳을 수 있는 저 "변혁적 개입"을 살펴보고, 이를 위한 임팩트 투자 원칙을 하나씩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임팩트 투자가 변혁적 개입을 놓치지 않으면서 규모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지점에 대해 말하면서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과오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는 지점도 반갑고 흥미로웠다. 


"임팩트 투자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 있어 더 중요한 논쟁은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어떤 식으로 규모를 확장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들을 했고, 그 선택이 지속성 있고 긍정적인 경제적.사회적 임팩트를 이끌어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다."(본문 116쪽)


"마이크로파이낸스에 대한 두 가지 주요 논쟁이 있다. 이를 통해 임팩트 투자에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중략)

둘째,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돈을 벌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중략)

목적이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효과를 앞세워 규모를 확장하자는 움직임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로파이낸스가 효과적인가와 어떤 환경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가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궁극적으로 규모의 확장이 주된 관점과 포부가 되어버렸다. 마이크로파이낸스의 폐해는 단지 규모의 확장을 임팩트보다 우선시해서가 아니다. 규모 확장을 위한 방법을 기존의 금융 시장에서 모색했다는 것이 문제였다."(본문 120쪽)


그렇다면 임팩트 비즈니스의 규모를 확장하는 방법은 어떻게 달라야 하고, 어떤 방법이어야 효율적인 방안이 될까? 임팩트 투자의 주류 금융화 논의가 시작되는 시기에서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누가 읽어도 시의적절한 논의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임팩트 비즈니스가 지역사회와 만나는 지점에 대한 질문을 건져올릴 수 있어 도움이 됐다.


(*마이크로파이낸스가 개발 패러다임과 수행을 어떻게 규정했는가에 대해서는 <빈곤 자본>(아나냐 로이)이 풍성한 논의를 제공해준다. 글로벌 상업은행. 투자 기관, 자본 시장의 금융 자본이 남반구 소액금융에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그 '권력'이 남반구의 빈곤 완화/퇴치 활동의 패러다임과 모습을 어떻게 바뀌어 놓았는지를 보여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