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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31. 2021

아이 옆에 누우면

휴직 488일째, 민성이 D+737

'아빠보다 꽃, 꽃보다 엄마.' / 2021.8.29. 군산 월명체육관


저녁 8시 반, 민성이를 재운 뒤 어둡고 조용한 거실에서 홀로 브런치를 쓴다. 밤엔 역시 차분한 게 좋다. 온종일 시끄러운 두돌잡이와 같이 있다 보니 더욱 이 고요함을 사랑하게 된 걸까.


어제(30일) 아내는 야근을 했다. 일이 쌓이고 쌓여 며칠 야근을 해야 일이 좀 정리될 것 같다고 했다. 아내의 야근이 오랜만인 만큼, 민성이와 단 둘이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주말에 부모님 버프를 받으며 편히 육아를 해서인지 별로 힘들진 않았다. 민성이와 이렇게 단 둘이 있는 것도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원 후에 집에 돌아와 민성이와 이것저것 하며 놀고 있는데, 느지막하게 그가 간식을 달라기에 아예 이른 저녁상을 차렸다. 부자가 함께 할머니표 카레를 먹고 대충 정리를 하고나니 6시가 좀 넘었다.


씻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민성이가 욕조에서 물놀이하는 걸 좋아해서 목욕은 거의 날로 먹는 느낌이다. 물론 머리 감는 건 여전히 싫어한다.


아내가 없으면 자연스레 민성이를 일찍 재우게 된다. 내가 아이를 일찍 재우고 싶어 하는 건 말해봤자고, 민성이도 엄마와 있을 때보단 덜 칭얼거린다. 자기가 생각해도 아빠는 노잼인가 보다.


책을 읽어주고 불을 끄려고 하면, 민성이가 늘 써먹는 레퍼토리가 있다. 일단 물을 달라고 하고, 물을 주면 그다음엔 콧물이 나왔다며 닦아달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취침 시간을 늦춰보려는 수작인데,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러는 게 참 귀엽다. 어제도 그는 자기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쓴 뒤에야 내 옆에 누웠다.


금방 곯아떨어질 것 같던 그는 계속 뒤척였다. 엉덩이를 내 코 앞에 둔 채 양 발바닥으로 내 얼굴을 계속 쓰다듬었는데, 그 발놀림이 너무 정교해서 애가 잠결에 그러는지 일부러 그러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아이 옆에 누워있는데 마음이 편안하다. 뭐랄까, 앞으로 마냥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어려운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내가 매일 민성이를 재우다 그렇게 곤히 잠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이에겐 그런 묘한 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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