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98일째, 민성이 D+747
민성이를 낳기 전의 일이다. 서울 모처에서 입사일이 비슷한, 다른 회사 여기자를 만났다. 수습기자 시절 같은 경찰서에서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어렸는데, 그녀는 이미 엄마가 돼있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지만 그땐 아이가 둘이었는지 하나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우리는 그날 닭갈비에 맥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아직 애가 없는 남자와 애 엄마가 만나니 자연스레 애 이야기가 나왔다. 오빠는 애 안 낳냐고 묻길래, 와이프가 아직 별 생각이 없나 봐, 라고 답했더니 그녀가 갑자기 내게 면박을 주었다.
요지는 내가 아내에게 잘 못하기 때문에, 혹은 확신을 못주기 때문에 아내가 아이를 안 낳으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어떻게 하는지 본 것도 아니면서. 여하튼 면박도 그런 면박이 없었다.
그녀는 내게 아이를 꼭 낳으라고 했다. 아이를 낳고 본인이 얼마나 행복한 줄 아느냐면서 그날 밥 먹는 내내 그녀는 그야말로 출산 전도사가 되었다. 실제로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게 느껴졌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아내는 내게 선물로 민성이를 낳아주었고, 나는 그녀보다도 8개월이나 더 육아휴직을 썼다. 그리고 이틀 뒤면 휴직 500일이다. 지금 다시 동료 기자의 말을 떠올려본다. 아이는 진짜 꼭 낳아야 해?
아이가 주는 행복은 확실히 크다. 아이의 미소, 애교, 부드러운 살결, 기분 좋은 향기, 멀리서 달려와 와락 안길 때 찡긋거리는 콧등, 암호문 같은 옹알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그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작지 않다. 아이는 스스로 크는 게 아니다. 내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다. 내가 더 땀을 흘리고, 더 고된 눈물을 흘려야 더 잘 자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내와 단둘이 데이트하기는커녕, 매일 싸우기 바쁘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니 매일 고성이 난무하고, 잠은 턱없이 부족하며, 집은 엉망진창이다. 일도, 애도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후회하지 않는다. 육아휴직을 500일 한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민성이를 위해 내가 치르는 비용은 정말 적다. 내가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결코 작아서가 아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