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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Sep 11. 2021

아직도 휴직을 망설이는 그대에게

휴직 499일째, 민성이 D+748

'아빠, 잠깐 비켜주실래요? 저 거기에서 귤 먹어야 하거든요. 빨리요.' / 2021.9.4. 우리 집


결혼을 하고 나서 유일하게, 그리고 유독 힘들었던 게 있다. 회식 날이면 어김없이 내려졌던 통금이다. 회식 자리에서 빠져나오는 건,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언제나 곤혹스럽다.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나의 직장, 보도국은 여전히 '마초'스러웠기에 회식 때 1등으로 집에 가는 건 특히 더 힘들었다. 그 당시 동료들은 날 보고 신데렐라라고 불렀다. 정시 땡 하면 모습을 감춘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아내가 야속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힘든 건 그때뿐이었다. 자리를 빠져나올 때 다소 민망함, 곤혹스러움을 제하면 모든 것이 나에게 이로웠다.


새벽에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내 몸에 좋고, 다음 날 출근할 때도 부담이 없다. 아내와도 다툴 필요가 없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손을 맞잡고 편히 잠들면 된다. 


남성의 육아휴직도 비슷하다. 휴직서를 부장 앞에 내밀 때, 힘든 건 그때뿐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이롭다. 아빠 자신은 물론이고, 아내와 자녀 모두에게 좋다.


내가 회식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면 다들 나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비통해할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역시 그때뿐이다. 내가 택시를 타자마자 동료들은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감히 장담컨대, 내가 예정대로 다음 달 복직한다면 회사에서 날 마주하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 잘 지내지? 뉴스 잘 보고 있어. 요즘 어디에 있더라?"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하지만 가정은 그렇지 않다.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원활하지 않고,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분명 어딘가 고장이 나있다. 내가 못 보는 것뿐이다.


백세 시대라고 하니, 내 인생을 100년으로 친다면 휴직 기간은 그중 1.5% 정도다. 가성비로 따져봤을 때, 이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서 이 정도의 효용을 누릴 수 있는 일이 내 인생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휴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 휴직을 망설이는 아빠에게, 휴직을 500일 쓰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이다. 아빠의 육아휴직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치 있고, 자신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무척 이롭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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