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188일째, 민성이 D+955
육아일기 말고 '복직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복직을 했는데, 벌써 188일, 여섯 달이 지났다. 지난 여섯 달,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쏜살? 쏜살은 너무 느리다.
지난해 10월, 다시 정치부로 돌아왔다. 복직 첫날, 동료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사무실엔 노트북 타자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래, 이 느낌. 이 느낌이었지.
그곳은 여전했다. 여전히 바빴다. 더욱이 대선을 코 앞에 둔 정치부였다. 대신 적응은 빨랐다. 내가 언제 육아휴직을, 그것도 1년 반씩이나 썼나 싶었다. 그렇게 느끼기까지, 글쎄, 일주일이나 걸렸을까.
예정보다 빠른 복직이라 가족 모두가 고생이었다. 일단 아내의 지역 근무가 두어 달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장 기러기 신세였다. 아내와 민성이는 군산에 남았고, 나는 홀로 상경했다.
아내는 일을 하면서 내 부모님, 즉 그녀의 시부모님 도움을 받으며 민성이를 챙겨야 했다. 나는 평일엔 서울에 있는 동생 원룸에서 출퇴근을 하다, 주말엔 버스를 타고 군산으로 향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님과 동생, 민성이까지 모두가 불편을 겪어야 했다. 가족 모두와 상의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일찍 복직을 한 탓에 내 옆의 다섯 명이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다 아내의 지역 근무가 끝나고 우리 가족은 설 전후로 이사를 마쳤고, 가까스로 완전체가 됐다. 그리고도 많은 일이 있었다. 민성이는 새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시작했고, 우리는 하원 도우미 이모님을 구했다.
등원을 시작하고 이모님을 구했다는 이 말, 써놓고 보면 간단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과정 하나하나만을 두고도 브런치 글 몇 개는 거뜬히 써낼 수 있다.
휴직에서 복직까지, 군산에서 서울까지, 그 어려운 과정을 그래도 무난히 마칠 수 있었던 건, 그새 훌쩍 커버린 민성이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아, 떠올리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아이. 이제, 이곳에서 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