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298일째, 민성이 D+1065
올해 초, 우리 가족이 상경을 한 뒤 아내와 내가 가장 먼저 알아봐야 했던 건 민성이 하원 이모님이었다(육아일기 말고 복직일기). 양가 부모님이 지방에 있는 맞벌이 부부에게, 이모님을 구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었다.
아내와 내가, 라고 적었지만 사실 내가 복직을 한 이후부터 민성이 관련된 일은 아내가 거의 도맡아 했다. 이모님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맘 카페와 각종 중개 앱에 닥치는 대로 구인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몇 분이 연락을 주셨다. 아내와 시간이 되면 함께, 안될 때는 따로따로 이모님을 만났다. 하원 도우미로서 이모님의 경험을 묻고, 우리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중 한 분을 낙점했다.
면접을 본 건 서너 분 정도였다. 대부분 내 어머니 또래의 중년 여성이었지만 여대생도, 어린이집 원장님 출신도 있었다. 강남 어딘가에서 한 여자아이를 오래 봐오셨다는 이모님이, 이래저래 우리 상황과 맞았다.
여기까진 순조로웠다. 이모님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더니 꼭 그렇지도 않네, 라고 생각할 때쯤 이모님에게 연락이 왔다. 요지는 다른 집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는 거였다.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하다. 그러니 그 이모님도 우리 눈에만 좋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잠시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일터의 조건을 따져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모님이, 어머님은 아니지 않나.
결국 우리는 면접 때 약속했던 것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고, 이모님은 그다음 주부터인가 민성이 하원을 도와주시기로 했다. 하지만 이모님은 출근하지 못했다.
출근 당일이었나 전날이었나, 우리는 그녀로부터 우리 집으로 오던 도중에 발목을 삐끗해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그 통보 역시 출근 당일이었나 전날이었고, 아내는 또 출근을 하지 못했다.
민성이 이모님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새 부서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 매일 휴가와 외출을 쓰며 동분서주했던 그녀였다. 이제 겨우 이모님을 구했다며 한시름 놓겠다 했던 아내는 깊이 절망했다.
그녀는 더 이상 이모님 면접을 보는 것도 싫다고, 연락 오는 분 아무에게나 민성이 하원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분만 면접을 보기로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