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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샘 Aug 17. 2024

[존재칼럼] 남편을 통해 존재사랑을 체험하다.

한국라이프 코칭센터 칼럼작가가 되어 쓴 첫 글

© maartendeckers, 출처 Unsplash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늦은 결혼을 했다. 

남편과 만나기 전까지 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았고, 만났고 또 헤어졌다. 

소개팅을 지겹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는데, 나는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마다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맛있는 밥 먹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다양한 직업군들, 그리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들을 듣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물론 지겨웠을 때도 있다.) 

그리고 서른 후반을 넘길 때쯤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지영 혹시 비혼? 독신주의야?"

그때, 난 한결같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닌데? 결혼 꼭 할 건데? 결혼을 안 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그냥 아직 내 짝을 못 만난 거야."

그럼 사람들은 내 눈이 높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 탓(?)도 있다. 

가끔 주변을 보면, 부모님 성화에 결혼을 한다는 친구나 지인들도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많이 태평하셨다. 

엄마는 믿음이 있으셔서인지 하나님이 만나게 하실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계셨다. 

심지어 형부나 올케를 하나님이 꿈에 보여주셨다면서 나의 신랑도 하나님이 꿈에서 보여주실 거라고 하셨다. 

엄마의 그런 믿음이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아빠랑은 가끔 둘이서 카페 데이트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그러셨다. 

"결혼을 억지로 하려고 할 필요 없어. 넌 지금처럼 그렇게 네 일을 즐겁게 하면 돼. 차라리 결혼하지 말고,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것도 좋지."

아빠의 나를 향한 지지가 나는 참 좋았다.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느껴졌다.    


© uns__nstudio, 출처 Unsplash


내가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던(?) 진짜 큰 이유 중 하나는 내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이기도 했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보다 내 일이 더 재미있었다. 

내 일과 결혼했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밤늦게까지 수업연구하고,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리코더 캠프도 하고, 음악회도 가고,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이 신났다. 

또 내가 좋아하는 연수를 받고, 다양한 분야에서 배우고, 나의 업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떤 경우엔 남자친구가 생겨도 스케줄이 너무 빼곡해서 남자친구와의 약속을 잡는데 진땀을 뺐던 적도 있다. 

실제로 남자친구와 만나는 것보다 다른 것이 훨씬 재미있기도 했다. 

그렇게 교사로서 나름 전성기라고 생각되는 시간들이 지나고 있었다.


남편을 만난 것이 그때쯤이었나 보다. 

내가 교사가 된 지 18년이 된 그해 봄, 그 해는 유달리 힘든 아이들을 만나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나의 교직생활 중 가장 힘든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자아이들만 스무 명, 여자 아이들이 열두 명, 성비 차이도 많이 났고, 남자아이들이 워낙 힘에 부쳤다.  

하루에도 싸움이 몇 번씩 일어났고, 출장으로 교실을 비운 날은 어김없이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교장실로 찾아온 학부모님의 항의를 받기도 했고, 하루에도 여러 번 눈물을 쏟았다.    

또, 리코더 앙상블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어서 연주회 준비로 조금 지쳐 있기도 했다. 

내가 교사가 된 지 꼭 18년이 되었던 2019년, 나에게 조금씩 이상신호가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Alex Hu, 출처 OGQ


이번에도 친구의 소개팅 제안에 흔쾌히 승낙을 하고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의 만남은 다소 지쳐있던 나에게 쉼을 주었고, 남편과의 데이트 시간은 내게 힐링이었다. 

남편을 만나면 뭔가 쉬는 것 같았다. 

남편은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주말이면 나를 데리고 어디든 가 주었고, 드라이브하는 그 시간은 나를 쉬게 했다. 

남편은 나에게 뭔가를 원하거나 요구하기보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거나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질문을 건네주었다. 

그런 다정한 남편과의 시간이 참 편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교실도 아이들도, 학교도 지금의 나에게는 버거운 짐이었다. 

계속되는 두근거림으로 심장은 곧 멈출 것 같았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마흔 즈음에 찾아온 번아웃은 공황장애를 일으켰고, 난 때로 교실을 벗어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그래도 책임감에 이 일을 놓기 어려웠다. 휴직도 생각해 보았는데, 이 아이들을 이대로 두고 나오는 것 같아서, 꼭 이 아이들을 버리는 것 같아서 나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었다. 


남편과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남편과 썸을 이어나가던 그때, 나는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 번아웃이 오기 전이었고, 그 당시엔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00 씨, 00 씨는 내가 왜 좋아? 내가 좋은 이유 열 가지만 말해줘. 

그냥 남편이 나를 칭찬하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그냥 나의 이런 모습도 좋고, 저런 모습도 좋고 하는 말을 들으며 힘을 얻고 자신감을 뿜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많이 고민하는 듯했다. 정말 어려워했다. 뜸을 오래 들일수록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게 이토록 어려울 일인가 하면서 아니, 바로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100가지도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겨우 10가지를 말 못 한다고? 너무 하네."

그러자, 그때, 남편이 입을 열었다. 


난,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냥.. 그냥 김지영이라서 좋은 건데

난 "그게 뭐야~~"했다. 

이 사람 안 되겠네. 

내가 좋은 이유 10가지를 말 못 한다고? 너무 정직하고 너무 솔직한 건지 아님... 수단이 없는 건지... 하면서 그렇게 조금 삐져 있었다. 

그 말 뜻을 깊게 생각도 못했다. 


© lucabravo, 출처 Unsplash


그런데 내가 번아웃이 오고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고 일주일의 병가를 냈을 때, 남편도 휴가를 같이 내고 덕유산 펜션에서 며칠간 요양을 하게 되었다. 가을이라 참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소진되어 힘이 하나도 없이 그저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때, 문득 남편이 나에게 해 준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냥 김지영이라서 좋은데?


만약 남편이 내가 에너지가 많고 활동적이어서 좋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또는, 잘 웃어서 좋다고 하거나 책을 많이 읽는 나라서 좋았다고 했다면? 

또는, 리코더 연주활동도 하고 교회에서 다양하게 봉사를 많이 해서 좋다고 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런 것들을 전혀 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좋아하지 않게 되는 건가. 

'그저 김지영이라서 좋다'는 말은 이런 나도 괜찮다는 말이다. 

아픈 나도. 울고 있는 나도. 소진되어 힘이 하나도 없는 나도. 그리고 잘 웃지 못하는 나도 말이다. 

지금 나도 변함없이 김지영이니까. 


'그 말이 진짜 좋은 말이구나'

갑자기 남편의 그 말이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났다. 

남편은 영문도 모르고 나를 토닥여주었다. 

이런 남편이라면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물었다.


"우리 결혼할까?"


그렇게 나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 준 나의 남편과 결혼을 약속했다. 

남편은 나에게 존재 사랑을 제일 먼저 알려준 사람이다. 


존재 코칭을 알기도 전에 그저 너는 김지영이라는 사실만으로 사랑받을만하다고. 네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너의 이런 것 때문에 가 아니라 그저 너라는 존재 자체로 충분히 사랑하고 있고, 사랑받아도 된다고 말이다.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나는 지독히 열심히 살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인정욕구와 성취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이뤄낼 때마다 사랑받는 느낌,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고, 그 성취들이 나를 빛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번아웃이 와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니, 그런 것들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받는 사랑은 나라는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남편을 통해 배웠다. 

나의 존재는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다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받음으로 나의 존재를 체험하는 것이다. 

(출처: 권영애 소장님 강의)



이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존재는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싶다. 

우리는 모두 사랑체험, 존재 체험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으므로.


한국라이프코칭센터(주)존재칼럼 금요일 작가 


'선생님의 해방일지'에 쓴 나의 글 부분을 조금 인용하였습니다.  


© freestock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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