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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May 08. 2020

나의 home은 어디인가

코로나19와 세계화의 상관관계

때는 1월 말, 한창 코로나19 뉴스가 중국을 넘어 한국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런던 여행에서 지금 살고 있는 싱가포르로 막 돌아왔을 때라 (안일하게도) 그냥 "아 또 다른 바이러스가 터졌나 보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뉴스들을 휙휙 넘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딱! 들어온 기사 하나. 한국 정부에서 우한으로 보낸 전세기에 한국 국적인 아이들 둘만 타고 중국 국적인 엄마는 타지 못 해 생이별을 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최근에 국적이 다른 남자 친구와 결혼 약속을 하여서일까 코로나19같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만약 또다시 생긴다면 나 또한 비슷한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냥 여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이 기사는 나에게 수많은 매우 현실적이고도 민감한 질문들을 던졌다: 나의 home (집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home. 고향, 안식처 정도라고 해두자)은 어디인가? 나의 국적은 무엇을 뜻하며 어떤 권리와 보호를 주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나? 


나는 어찌 보면 김해나 보다는 해나킴이라고 불리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다. 인생의 반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해외에 살며 한국인이면서 이방인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외국인은 아닌 좋게 말하면 글로벌 시티즌 나쁘게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끼인 뭐 그런 모호한 정체성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저 기사를 읽기 전만 해도 딱히 내 삶의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이유도 필요성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국민들은 home으로 돌아오라 하고 공항은 출입국을 제한시키는 상황을 지켜보며 지난 몇십 년간 지속되었던 세계화 (globalisation)이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으로 가야 하는 건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싱가포르에 있어야 하는 건지 아님 약혼자 따라 미국으로 가야 하는 건지. 만약 정말 만약에 현재 상황이 악화돼서 자원이 부족해진다면 한국 정부는 해외에서 귀국하는 자국민을 우선 치료해줘야 하는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을 우선 치료해줘야 하는지, 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의 배우자 또는 아이들도 치료해줘야 하는 건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선을 그어야 맞는 건지. 이 복잡한 질문들은 한국과 한국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전 세계에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인가... 우린 어떡하라고. 


평소라면 이런 문제들 따위 생각하지도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화된 세상에서 산 우리에게 국경은 지도에나 표시된 선이었고 꽤나 자유로운 국가 간 이동 (여행, 공부, 일, 결혼 등등)이 가능한 삶에서 국적이라는 것의 의미와 중요성은 줄어들었으니까 말이다. 근데 갑자기 생긴 바이러스로 인해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자 이제야 깨닫는다. Home의 기준이 적어도 법적으로는 국적으로 나뉘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과 보고 싶어도 만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불편한 사실은 나를 더욱더 고민에 빠트린다. 나의 home은 어디일까? 이건 마치 나는 누구냐고,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같아서 더욱더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다. 


답이 없는 건지도. 


영문 버전은: https://medium.com/@haena_theidentitymap/where-is-home-covid-19-prompts-reality-checks-for-global-citizens-7eda2ff90c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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