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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Oct 10. 2022

시험이 끝났다


가을의 찬 공기 때문에 소매 속으로 손을 움츠리던 날, 쨍하게 란 하늘 자꾸 시선을 빼앗기던 토요일에, 나는 잠을 못 자 퀭한 얼굴로, 누가 봐도 수험생 차림새를 하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올해 1월부터 준비했던 청소년상담사 3급 필기시험이 드디어 끝났다.


다행히 시험 응시까지 완주를 했지만 시험 한 달 전에 원서 접수를 할 때까지만 해도 포기할 뻔했다. 일하랴 육아하랴 바빠서 공부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매일 30분 공부하는 게 목표였는데 그마저도 못한 날이 많았다. 게다가 그 무렵에 다른 하고 싶은 일까지 생겨버려 시험은 내년으로 미뤄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 이번에 시험 안 보려고."라는 내 말에 남편은 무척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올해 안 봤는데 내년에는 볼 수 있을 것 같아? 아닐 것 같은데." 식의 멸시 같기도 하고 핍박 같기도 하고 구박 같기도 한 잔소리 덕분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오기를 부릴 수 있었다. 시험 준비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나마 비벼볼 만했다. 1월 중순부터 약 9개월 동안(매일은 아니더라도) 공부를 했으니 그동안 용쓴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시험 접수를 하기 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를 했는데, 접수를 한 순간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느슨했던 마음에 고삐가 당겨졌다. 벼락치기와 턱걸이가 삶의 모토인 나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 순서를 밟았다.


다행히 시험 4일 전에 휴직을 했때문에 그 4일 동안 막판 벼락치기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남편이 시험 전날 1박 2일 독박 육아를 해준 덕분에 본가로 가서 잠들기 전까지 공부를 하다가 시험을 보러 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책 내용을 머리에 얼마나 욱여넣었는지 머리에서 김이 나는 기분이었지만.


청소년상담사 3급 시험은 (적어도 내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출문제에는 늘 나를 잡아먹을 듯 무서운, 아니 어려운 시험 문제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책 어느 구석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내용이 빼꼼 나와 "너 나 아니?" 하고 물어보는데 알 수 있을 턱이 있나. 어려운 문제만 보면 동공이 흔들리고 심박수가 높아지고 평정심이 흔들리고... 아무튼 유리멘탈이다. 공무원 시험은 어떻게 봤나 모르겠다.


시험날 시험지를 딱 펼쳤는데, 올해 시험도 역시나 어려웠다. 답을 알고 푼  못지않게 몰라서 찍은 문제가 많아서, 시험이 끝나기분이 썩 후련하지만은 않았다. 날 오후에 Q-Net에 가답안이 올라왔을 때, 정말이지 손을 덜덜 떨면서 채점을 했다. 결과는 평균 70점. 합격선평균 60점(과락은 40점)이라 붙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번에도 턱걸이를 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여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동생은 "힘을 너무 낭비했네." 하며 너무 열심히 했단다. 하긴 턱걸이라고 하기에 70점은 고득점이다.


이제 필기시험이 끝났을 뿐 자격증 취득까지는 아직 면접이랑 자격연수가 남았다. 그래도 큰 산 하나를 넘어서 홀가분하다. 면접까지 잘 봐서 이 뿌듯한 기분으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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