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10년 #1
#1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라 착각하게 된다.
2008년 한여름,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나의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엄마는 마트에 선풍기를 사러 갔다가 나에게 소개할 남자를 알게 되었다며, 이번 주말 서울에서 소개팅을 하라고 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만남은 그야말로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아버지와 함께 선풍기를 고르러 갔던 엄마는 마음에 드는 선풍기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선풍기를 고르던 한 아주머니의 권유로 옆 마트로 함께 이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선풍기를 사게 된 엄마는, 친절하게 그 아주머니를 집 안까지 바래다 드렸고, 아주머니는 자연스럽게 거실에 걸린 사진 속 아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서울의 한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에게 참한 아가씨를 소개해 달라는 말에, 엄마는 내심 나를 떠올린 듯했다.
그렇게 7월 17일 저녁 7시, 강남역 7번 출구 앞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소개팅 자리라기엔 너무 무심한 차림이었다. 빛바랜 청바지에 구겨진 셔츠, 운동화를 신고 나온 그는 첫인상부터 별로였다. 큰 기대 없이 마주한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인생의 꿈이 뭐냐고?"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를 고민해 온 이상주의자였던 나는, 인생의 꿈을 찾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을 찾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무심한 답은 그를 마치 인생에 대한 어떤 고민도 해본 적 없는 철없는 아이처럼 느껴지게 했다. 내키지 않는 만남을 세 번이나 이어가던 중, 예의를 갖춰 마무리하려 할 때, 그는 뜻밖의 고백을 했고, 그렇게 어정쩡한 연애가 시작되었다.
사실, 그때 나는 7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엄마의 반대로 막 헤어진 직후였다. 연애 기간 내내 고시를 준비하던 그를 엄마는 마뜩지 않아하셨고, 결국 엄마가 원하는 소개팅까지 나가게 된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고백은 당혹스러웠지만, 7년의 만남을 정리하고 싶었던 마음에 스스로를 다독여 "조건 괜찮아 보이는 남자"와의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