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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썬 May 14. 2020

서른, 대기업 때려치고 배낭 멘 불효녀가 되었다.

Feat. 3년 차 백수 세계여행자

2018년 4월 12일.



아마 내 생일만큼이나, 그리고 첫 사회인으로서 대기업에 입사하던 날 만큼이나 잊지 못하게 될 그 날.

내가 홀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탄 날이다.


그 역사적인 날의 전날 밤을 떠올려 보면 잠 한숨 못 자고 엄마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배낭을 쌌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너무 무거운 것 같은데?" "그럼 저건 뺄까?" "현금은 어디에 숨기지?" 쉽게 배낭 지퍼를 잠그지 못했던 건 아마도 불안한 내 마음, 그리고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배낭 속 짐을 꾹꾹 누르듯 마음에 담아둔 채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내가 대학교 기숙사로 떠나던 날도 눈물을 흘리셨던 우리 엄마는 당연히 이 날도 나를 배웅하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자식밖에 모르는 엄마를 뒤로하고 그렇게도 말리던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하겠다며 떠나는 딸이 얼마나 걱정되고 무모해 보였을까. 또 얼마나 미웠을까.


그런 엄마와 달리 나는 덤덤하게 인사를 했고 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탔다. (아빠는 그저 잘 가라며 손 흔드는 걸 보면 나는 확실히 아빠를 닮았다.) 마산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5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여행 계획을 한번 되짚어 봤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어쩌면 시작하기도 전에 "여행하고 돌아오면 뭐하지"라는 터무니없는 걱정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여행한다고 큰 맘먹고 산 5만원짜리 레인커버


그렇게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티켓팅을 하고 수하물을 부쳤다. 공항에 오면 그제서야 여행이 실감 나고 설렌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나 또한 그랬다. 라운지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면세점 순회도 하면서 그 설렘을 만끽했다. 비행기에 올라타는 동시에 치열한 혼자와의 싸움이 시작될 것을 알았기에.


입사 7년차 차대리의 아주 간단한 퇴직 신청서


제목에는 거창하게 '대기업 때려치고'라고 적었지만 사실 그렇게 멋있게 사표를 던진 건 아니었다. 조선업 빅3로 한참 잘 나가던 우리 회사는 우스갯소리로 '중견기업'이라 부를 만큼 어려워졌고, 성과금 같은 건 몇 년째 끊긴 상태였다. 연이은 적자에 회사에서 은행에 제출한 회생계획 중 하나였던 구조조정. 맞다. 나는 구조조정의 혜택(?)을 받은 대기업 설계부 대리 나부랭이였다.


당시 재직기간 만 7년 차 이상이 희망퇴직 대상자였고 꽤 많은 위로금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난 만 6년 8개월이었던 터라 해당되지 않았다. 딱히 야근을 많이 한 것도, 주말출근을 한 것도, 업무강도가 그리 빡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부족한 4개월이 정말 미치도록 아쉬웠고 간절했다. 그저 '20대를 바친 노예생활'을 그만하고 싶었을 뿐이었달까.


일명 '만년부장'들을 노린 구조조정이었지만 그들의 엉덩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덕분에 회사의 목표치에는 턱도 없었는지 만 4년 차 이상으로 대상자가 확대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고민할 새도 없이 '개인사유'라는 네 글자의 퇴직사유를 적어 신청서를 냈고 그렇게 무작정 계획에도 없던 백수가 되었다.


왜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했냐고? 사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냥 남들 다 퇴사하면 공식인 양 세계여행을 떠나길래 나도 떠나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의무감이 가장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듯 재취업을 떠올렸기에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긴 휴가는 없을 거야'라는 생각에, 어쩌면 반강제적으로 여행을 계획했었는지도 모른다.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도전해 보고 싶었던 나는 국민 배낭여행지 남미를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정보가 많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여행책자 하나 없었을 때라 처음 가보는 골목길 탐험을 즐기던 어릴 때의 나처럼 마냥 설렜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 안


그래도 바로 아프리카로 떠나기엔 겁이 났었는지 나는 먼저 유럽으로 향했다. 내 버킷리스트였던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한 달을 보내기로 하고 러시아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17시간을 날아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고, 5개월 뒤에 돌아오겠다던 딸은 유럽, 아프리카, 인도 그리고 네팔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서른 두살이 된 지금 자동차를 끌고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겠다며 캐나다와 미국을 지나 멕시코에 있다.


그렇게 나는 불효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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