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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썬 May 15. 2020

되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바르셀로나

But 내가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도시

2018년 4월 12일 ~ 4월 21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의 밤


그렇게 불효녀가 된 나의 세계여행 첫 도시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4월 12일 아침에 출발해서 17시간을 날아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 7시간 느린 시차 덕에 스페인은 여전히 4월 12일이었다. 해외여행이 처음도 아니었지만 이런 것들마저 신기하게 느껴졌고,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 유심은 장기 정지를 시켜놓은 터라 로밍 서비스를 쓸 수도 없었던 나는 공항 와이파이로 겨우 숙소 위치를 캡처해 놓고,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로 향했다. 깜깜한 밤 조용한 골목길이 무섭기는커녕 그 고요함마저 설렜던 걸 보면 그 날 나의 아드레날린은 커피를 연속으로 다섯 잔은 때려 부은 정도이지 않았을까.


호스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린넨과 방 카드키를 받아 들었다. 규모가 꽤 컸던 미로 같은 호스텔에서 내가 묵을 여성전용 룸을 찾아 방 한구석의 작은 침대에 짐을 풀었다. 잠든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려 대충 배낭을 던져 놓고 일단은 고단한 비행에 지친 몸을 뉘었다.


매일같이 분주했던 람블라스 거리


사실 나는 도시보다는 자연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내가 기대했던 '정열의 나라' 답게 분주하고 활기가 넘치는 바르셀로나는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현대'와 '고딕'이라는 단어가 적절히 공존하는 이 역사적인 도시에서, 매일같이 '카탈루냐 독립시위'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꼈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역시 가장 먼저 발걸음이 향했던 곳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상징, 사그라다 파밀리아였다. 1882년에 착공했다는 이 성당은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었고 2026년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대부분 여행자들이 '가우디 투어'를 많이 이용하는데 나는 그런 단체 투어는 질색이라 혼자 여유롭게 성당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마이크를 찬 한국인 가이드의 차분한 설명을 본의 아니게 엿듣기도 했다.


매일 아침 마셨던 보케리아 시장의 과일주스


8박 9일 동안 바르셀로나 시내를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아침이면 항상 똑같이 보케리아 시장으로 가서 신선한 과일주스와 그날그날 땡기는 메뉴로 아침을 때웠다. 오후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봐 두었던 관광지와 숨겨진 사진 스팟들을 찾아다녔다. 30유로짜리 뮤지엄 패스를 사서 미술관이란 미술관들도 모조리 관람했고, 하다못해 자라(Zara) 매장에 들어가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기도 하면서 '외출강박증'이라도 걸린 사람마냥 걷고 또 걸었다. 


세계여행 3년 차가 된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이미 3명의 동행을 구해놓았고 저녁이면 내가 주선자(?)가 되어 그 사람들을 모았다. 골목길을 걸으며 각자 오후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맛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하몽에 샹그리아를 마셔댔었다. 종종 근교 소도시를 함께 여행하기도 했고 와인을 사 들고 언덕에 올라가 야경을 보며 인생을 논하기도 했다.  


메시밖에 모르는 나의 유럽축구 첫 관람


그 동행들 중에서도 스페인, 포르투갈을 한 달간 함께 동행했던 도은이와의 첫 만남은 FC바르셀로나의 축구경기장에서였다. 나는 축구라고는 2002년 월드컵 이후로 본 적이 없었지만 '무조건 축구는 봐야 된다'는 친구들의 성화에 의무감으로 축구표를 검색하고 같이 갈 동행을 구했던 것이었다. 이 날 출전한 축구선수들 중에 내가 이름을 알고 있었던 선수는 '메시' 한 명뿐이었다. 한국에서 야구장을 즐겨 다녔던 나는 우리나라의 열정적인 떼창(?) 응원 같은 문화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조용히 축구를 관람하는 분위기에 조금은 시시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메시가 공을 잡을 때마다 미친듯한 환호를 보내는 걸 보면서 그가 대단한 선수이긴 한가보다 했다.


몬주익 광장에서 비눗방울과 놀고 있는 귀여운 꼬마


나는 바르셀로나를 떠올릴 때면 이렇게 즐거웠던 기억들 뿐이지만, 정작 이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고 무엇이 나에게 남았냐 하면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직 초보 여행자였던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즐거운 것'을 좇아 일명 흥청망청 여행을 했고 그로 인해 바르셀로나를 떠날 때는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나는 이렇게 돈을 펑펑 쓰면서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하려고 나온 게 아닌데.." 다른 여행자들도 그러하듯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나가야 할지, 하다못해 전 세계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라도, 이 '백수생활'과 '불효'에 대해 합리화하기 위해 무엇 하나라도 답을 얻어야 했다.


나는 그래서 더 바르셀로나를 사랑한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무 걱정 없이 온전히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곳이기에. 그 '즐거움' 덕분에 조금은 빨리 내 여행의 방향을 고민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 나는 바르셀로나를 떠나면서 삼십춘기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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