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가다.
죄송한데 한 달 정도 돈을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쓰고 지우는 것을 수십 회 반복하다 어머니께 메세지를 보냈다.
4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답장이 도착할 때까지 난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어머니는 흔쾌히 천만 원을 빌려주시기로 하셨고, 나는 빠른 시일 내에 갚기로 했다.
작년에 받은 4천5백만 원의 케이뱅크 마이너스 통장 만기가 공포로 다가왔다. 연장을 하거나 대출 갈아타기를 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이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년보다 떨어진 신용등급을 회복해야 했다. 올해 추가 대출한 현대카드(2금융권) 천만 원의 대출을 상환해야 신용등급을 회복할 수 있었다. 올해 대출까지 하며 이사를 한 터라 여유자금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아껴서 딸에게 좋은 것들을 해주고 싶어 하는 아내에게는 현재 상황을 도저히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결국 어머니께 손을 벌리기로 했다. 현재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인해 부모님께서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올해 우리 집이 이사를 할 때도 부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금전적으로 보태주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아버지 병원비로 인해 보태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난 지금 갈 데까지 간 상황인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스무 살 성인이 된 이후 지금까지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집이 풍요롭지 않아 일찍 철이든 나는 대학 생활 4년 내내 과외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고, 군대를 다녀온 뒤 2년도 되지 않고 취직해서 어떻게든 알아서 꾸역꾸역 살아왔다. 이렇게 생활하다 부모님께 큰돈을 빌려달라는 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알아서 잘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었는 데, 칠십 대 부모님의 노후자금에 손을 대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한 달 내에 빨리 돌려드리고 큰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돈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아실 것 같다.
평소 주식 매매를 좋아하는 아들이,
생전 돈을 빌리지 않던 아들이
갑자기 큰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면
무언가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약속한 날짜보다 일찍 돈을 보내주셨다.
난 그 돈으로 2 금융권 현대카드 대출을 상환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신용등급이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 않았고, 9월부터 새로운 대출정책이 적용돼서 대출 연장이나 대출 갈아타기가 잘 될지 걱정이다. 이 위기를 무탈하게 넘어가서 대출을 차근차근 갚아나가는 것에만 전념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