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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Jan 05. 2023

좌충우돌 방송업무

식은땀이 절로 나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다.

"선생님, 캠코더 배터리가 자꾸 깜박거려요."

"뭐라고? 어디 보자."

그래, 며칠 전 방송부 카메라 맡은 아이가 내게 건네던 칩은 바로 캠코더 1번의 칩이었던 것이다. 캠코더 2번에서 칩이 나왔다고 해서, 아무리 칩을 넣는 곳을 찾아도 안 보여 서랍장에 넣어놓았었다. 급히 서랍장으로 갔는데 칩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우선 학생들을 수업에 돌려보내고 서랍장 여기저기를 다 뒤지며 칩을 찾았으나 칩이 없다. '이런, 어쩌지?'


그렇다고 방송실에 있을 수만은 없다. 더 중요한 졸업식이 강당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달려서 강당에 가서 방송시설을 한번 더 확인한다. 다시 뛰어서 방송실에 온다. 서랍장을 뒤지며 칩을 찾는다. 아.. 9시 15분경, 바구니를 들었는데 무언가가 툭 떨어진다. 내가 그리 찾아 헤매던 가로세로 1.5 제곱센티미터의 칩이다. 아,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 칩을 캠코더에 넣자, 충전이 되기 시작했다. 휴... 한 숨 돌린다. 9시 20분경 방송부원들이 와서 10분 후에 있을 종업식 리허설을 한다. 25분경, 이제 시작하려던 순간, 한 학생이 컴퓨터 전원을 눌러버렸다. 그 말인즉슨, 중앙제어장치가 있는 컴퓨터가 꺼져버렸다는 뜻이다. 너무 당황해서 컴퓨터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이 어긋났는지 소리가 송출이 안된다. 그때에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들어오신다. 얼른 컴퓨터를 모두 끈 후 다시 재부팅시키고, 교무부장선생님께 컴퓨터가 꺼져서 다시 시작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두 컴퓨터가 모두 켜졌고 윈도우화면이 시작할 즈음 교장선생님께서 오셨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에 걸리는 1분이 10년같이 느껴졌다. 다행히 소리가 제대로 송출이 되었고, 바로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후, 교장선생님과 교무부장 선생님께서는 학부모님들께서 오셨다며 급히 강당으로 가셨다. 나라고 방송실에 있을 순 없다. 빨리 강당으로 다시 가야 한다.


강당에 도착해서 아침에 틀어둔 음악이 잘 재생되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 말씀하실 때, 마이크 스탠드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어제 연습할 때에는 무선 마이크로 하기로 했었는데...... 유선마이크를 한쪽에 꼽고 몇 번 음향을 올려야 하는지 다시 테스트했다. 교장선생님께서 "마이크가 안 나와?" 하셔서, "어제 다 테스트해 두었습니다."라고 급히 말하고 얼른 몇 번 마이크인지 찾았다. 그러다가 단상을 중앙에 두는 것을 알고, 마이크를 다른 단자에 꼽고 다시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땀이 주르륵 흐르는 듯했다. 다시 빔프로젝트로 돌아가 교육감님 영상을 틀었다.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신호를 주시며, 얼른 시작하자고 하신다.


오프닝 영상을 틀었는데, 아뿔싸... PPT와 mp4영상이 호환되는 과정에서 속도가 빨라진 영상 하나를 내가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지나갔다. 다행히 오프닝 영상이 많이 어색하진 않았고,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매끄럽게 넘어가셨다. 다음으로 반별 학생 입장 시간. 분명 어벤저스 영상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학생들이 등장할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는 거의 패닉 상태에 이르렀다. 학부모 박수소리에 다행히 묻혀 학생들이 잘 입장했지만, 난 그동안 그 이후의 소리가 잘 안 나올까 봐 노심초사하며 괴로워했다. 입장 후, 국민의례로 넘어가기 전에 빔 프로젝트를 가리고 PPT를 껐다가 다시 실행했다. 혹시 소리에 오류가 있을까 봐서였다. '분명 리허설 때에는 잘 되었는데....' 다행히 국민의례 음향은 무사히 잘 나왔다. 한숨 돌렸으나, PPT를 넘길 때, 스페이스바와 방향키를 눌렀는데, 영상이 종료되었음에도 다시 영상 초기 장면이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내게 익숙한 마우스 휠을 썼어야 했나 보다. 마우스 휠로 얼른 다음 슬라이드로 이동했다. 학생들 졸업장 받을 때마다 학생들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PPT화면을 넘겼다. 키보드를 넘기는 내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물기가 촉촉이 키보드에 묻어 있었다. 어깨에는 잔뜩 긴장이 들어가 있었다. 앉아있는 의자는 가시방석 같았다.


드디어 학생들 공연 시간이 되었다. 이제 음원이 잘 나와야 하는데, 아침에 확인했을 때 잘 되었으니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음원을 재생했다. 다행히 아침에 학생들 몇 명과 맞춰본 덕분인지 긴장은 덜 되었다. 공연이 무사히 마치고 이제 교장선생님께서 졸업을 축하하는 말씀을 해 주실 시간이 되었다. 유선 마이크를 설치했는데, 선이 짧아 정 중앙에 단상을 두지 못하고 살짝 왼편으로 단상을 두고 교장선생님 말씀이 진행되었다. 왠지 다 나 때문인 것 같아 계속 자책이 되었다. '선을 좀 더 긴 마이크를 확인할 것을 그랬을까? 무선마이크와 유선마이크 두 가지 버전을 다 확인해 둘 것을...' 교장선생님께서 감동적인 축사를 하실 동안, 나는 초긴장하며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교장선생님 말씀이 끝나고 졸업을 축하하는 노래를 틀었는데, 또다시 긴장했다. 축하 노래는 avi로 변환해 두지 않았는데(영상 아이콘이 잘 떠서) 혹시나 호환이 안 되어 오프닝 영상처럼 2~3배속으로 진행될까 봐 두근두근했다. 다행히, 졸업식 노래 영상은 제속도로 잘 재생되었고, 영상을 6학년 선생님께서 너무나도 감동적으로 만드셔서 긴장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교가를 부르고, 졸업식이 마무리되었다.


아.... 완전 십 년 감수했다. 모두가 즐겁게 졸업사진을 찍을 때, 나는 청테이프로 붙여둔 선을 정리하고, 무거운 빔프로젝트를 들고 낑낑대며 행정실 인쇄고에 넣어두었다. 다시 강당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정리하고 교담실로 향했다. 교담실에서도 짐정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책상과 물건들을 교체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깜박하고 원어민 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전달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내 책상도 아직 정리가 덜 끝난 상태였다. 방송 준비에 정신이 팔려, 짐을 다 정리해두지 못했던 것이다. 선생님들이 짐정리를 도와주시는데, 책상서랍이 깨끗하지 못해 부끄러웠다. 어찌어찌 짐을 다 옮기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럴 수가... 그런데, 내가 아침에 조퇴신청을 안 올렸던 것이다. 아침에 안전부장님께서 안전지킴이 면접 봐야 하는데 상담실 탁자에 짐이 있다고 하셔서, 그 짐을 내려놓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은 못한 것이다. 나이스에 조퇴를 올려야 선생님들과 나가서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데, 난감했다. 선생님들께서 교담실에서 같이 시켜서 먹자고 하셨지만, 이미 식당도 다 정해둔 상태라 마음이 어려웠다. 결국 선생님들께 먼저 드시고 계시면, 나는 원어민 선생님과 학교에서 점심은 해결하고 차 마실 때 합류하기로 했다.


바쁘지 않을 때에는 괜찮은데, 바쁘면 구멍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정말 애쓰고, 애쓰며 긴장한 하루였는데, 내 부족한 부분들이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방송이 송출이 결국에는 원만하게 잘 이루어졌다는 점, 짐정리도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잘 이루어진 점, 마지막으로 선생님들과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 점에서 오늘하루는 해피엔딩이다.


<내 빈틈을 채우기 위한 나의 다짐>

1. 바쁜 날은 잠을 좀 더 줄이고 아침 일찍 출근하자.(오전 7시 정도)

2. 최소한 리허설은 2번 정도 꼼꼼히 하자. (리허설 1번 하고, 공연 리허설은 3번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점이 있었다.)

3. PPT 넘길 때, 필요한 키보드 버튼 알아놓고 단축키도 외우자.

4. 다른 이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내 일을 못 챙겨 결론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바운더리를 잘 세우자.

5. 정리정돈에 힘쓰자. 정리정돈의 전략을 익히고 좋은 습관을 만들자.

#. 연구부장님의 제안:

종업식 방송 영상을 미리 찍어두어 졸업식에만 집중하면 덜 힘들 것 같다.

=> 좋은 아이디어다. 일이 바쁠 땐, 바쁨의 정도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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