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출신 학교의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현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른 후반부터, 지금까지 '학벌주의'의 영향력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특히 올해 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보이지 않는 학벌의 힘이 얼마나 큰지, 때로는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느낀다.
때를 거슬러 고3 수능, '수능'이 이렇게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줄 알았다면, 더 피 터지는 노력으로 공부했을까?
그 당시 전교 1등을 하던 친구는 점심을 5분 만에 먹고, 공부하러 교실로 향했다. 공부할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난 그 당시, 건강을 해쳐가며 그렇게까지 공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그래서 꿋꿋이 밥은 천천히 먹었다. 그 친구는 서울대에 갔고, 아마 엘리트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4당 5 락'이란 말이 있다. 4시간 잠자며 공부하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다. 수험생 시기를 되돌아보면,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한 뒤, 찬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던 때가 떠오른다. 서울대를 목표로 하고, 하루 네 시간 남짓만 자며 치열하게 공부했다. 밥을 5분 만에 먹지 않은 것 빼놓고는, 정말 열심히 공부한 것 같은데 수능 성적이 평소보다 많이 낮게 나왔다. 그 당시에는 인기가 높았던 교대에 지원했다. 그때에는 연세대 합격자도 교대에 입학할 정도로 교대가 인기가 꽤 있었다. 나는 재수학원을 다닐 뻔하다가, 추가합격으로 지방에 있는 교대에 입학했다. "공부한 게 아깝지 않니?"라던 몇몇 선생님의 권유에도, 부모님의 바람과 현실적인 이유로 교대에 진학했다.
늘 지식에 굶주렸지만, 교육대에서의 공부는 내가 원하는 형식의 지식 탐구 과정과는 조금은 달랐다. 그러나, 내가 관심 있는 과목은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선생님이 되었고, 나는 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벌'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지극히 실용적인 입장에서, '좀 더 나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학문에의 호기심'이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박사과정까지 졸업했다.
그러나, 일과 학업의 무리한 병행은 나에게 많은 페널티를 안겼다. 유산, 난임으로 인한 시험관시술, 복통 등 공부의 대가는 컸다. '여자'이기에 30대에만 할 수 있는 과업의 시기를 놓쳤다. 밤잠 줄이며 체력을 갈아 넣어했던 공부로 인해, 몸은 많이 쇠약해졌다. 그러나, 보상은 많지 않았다. 뭐, 책을 쓸 경우 경력에 '박사'를 쓸 수 있다는 정도랄까?
올해, 센터에서 근무하면서, '학력'이 아닌 '학벌'의 위계 아닌 위계를 느끼며 더 회의를 느꼈다. 대학교 출신은 같더라도, 소위 명문대에서 대학원을 한 경우, 그들의 입김과 파워,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다름을 느끼고 마음이 불편했다. 되돌아보면 나는 서울까지 다니며 공부를 할 수 있는 '돈'과 '시간', 휴직을 할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그렇게 타협한 결과가 이렇게까지 나를 아프게 할 줄 알았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유학을 갈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선택한 지방대 박사의 애매한 위치가 최근 나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특히, 교수가 되는 길을 알아보면 더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다. 교수 임용의 문은 워낙 좁고 해외 박사도 넘쳐난다. 그렇다고 꿈꾸는 유학을 떠나기에는, 여러 제약들이 존재한다.
어쨌든, 학문을 다루는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학문을 하는 자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에 부딪치며 ‘자격지심’에 숨이 막히는 듯할 때가 있다.
도대체 학문이 무엇인가?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이 독점하는 영역일까?
명문대를 나와야만 위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유명한 대학의 경우, 연구자로 잘 훈련될 수 있는 환경임은 부인하기는 어렵다. 전일제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과, 일을 마치고 밤에 연구하는 것은 투입 가능한 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올해 이 '연구'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나의 자존을 지키며 성장할 것인가? 내가 '연구'를 좋아하기에, 더 이 일이 즐거우면서도 고통스러운 것 같다. 무엇보다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기에 ‘내가 지속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일을 계속 해도 될까?’에 대한 질문이 들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구를 할 시간에, 차라리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돈을 모으면, 나중에 또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생각에 고뇌하면서도, 연구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나는, 왜 그런 것일까?
학문이란 누구나 갈고닦을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출신 대학이라는 좁은 문으로만 통과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 문턱에 선 나는,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차탁마(切磋琢磨)를 떠올린다.
어떤 일이든, 지속적으로 갈고닦다 보면... 언젠간 빛을 내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