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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성장하는가?

by 햇살샘

과거의 나, 지금의 나


‘어제보다 나은 나’

책이나 SNS에 보면,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어제보다 더 나아졌는지를 살피라고 권한다. 나는 과거에 비해 좀 더 나아진 점이 무엇이 있는지 되돌아본다. 교사가 된 지 17년이 지났다. 17년이면 꽤 많은 시간이다. 갓난아기로 태어나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우고 대학생으로 보낸 초반의 23년,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 보낸 17년, 그 세월 동안 난 어떻게 살아왔으며 과거에 비해 더 성장했을까?


그럼 ‘성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성장(成長)은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점점 커짐”(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며, 생명체가 발달하며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는 끊임없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경험 속에서 일어난다. 특히 인간의 성장은 단순히 키가 크고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독립적인 인격체이면서도 동시에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성숙해 가는 과정이다.


돌아보면, 나 또한 나를 둘러싼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성장해 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 학창 시절에는 학교, 직장인이 되어서는 동료 선생님과 학생들을 만나며 무수한 상호작용을 거쳐왔다. 그 과정에서는 나에게 영향을 준 많은 이들이 있었다. 특히 교사가 되어 만난 선배 선생님, 동료 선생님들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20대와 30대 초반 시절에는,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도록 본을 보여주신 선배 선생님, 교사로서 전문성을 키우고, 교육에 공헌하고자 온 열정을 기울이시는 선배 선생님을 만났다. 특히, 수업코칭연구소를 만나서는 ‘이렇게 따뜻한 분들이 계실까?’, ‘이렇게 수업에 진심인 분들이 계실까?’ 하며 경탄했다.


특히 ‘수업자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수업자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하는 그 진심 어린 철학’에 감동했다. 어떤 화려한 수업 기술을 익히는 시간이 아닐지라도, 잠잠히 선생님들의 수업을 보고 나누며, 때로는 내 수업을 나누며, 마치 교사의 삶의 뿌리를 내리는 듯했다. 그렇게 수업코칭연구소를 2017년에 만났고, 올해로 벌써 8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한 개인이 유기체처럼 성장하듯, 공동체도 생명체처럼 역동하고 변화하며 성장하고 성숙해 감을 경험했다. 그 가운데에는, 수많은 선생님들, 특히 공동체를 이끌어가시는 리더분들의 남모를 희생과 헌신, 눈물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희생과 섬김을 아기가 엄마 젖을 먹듯 받아먹으며, 어느덧 중년에 이르렀다. 그들 덕분에 무수히, ‘포기하고 싶던 순간’을 이겨내며, 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게 성장해 왔다.


또한, 수업코칭연구소와 함께 하면서, 공동체가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비전’과 ‘철학’ 임을 깨달았다. 수업코칭연구소는 100년의 공동체를 바라보며, 수업코칭연구소의 교육과정을 함께 만들고, 선생님들이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고 자신만의 색깔, 철학을 지닌 콘텐츠를 발견하도록 돕고 있다. 다른 누군가의 수업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투박하더라도 진정성을 담아 나의 삶의 숨결이 담긴 메시지를 전하는 수업의 예술을 체득하고 있다.


돌아보면, 20대의 나보다 30대의 내가, 그리고 40대에 들어선 내가 많이 변화해 왔음을 발견한다. 20대는 탱탱한 피부, 넘치는 에너지가 자랑이었지만, 모든 것이 서툴고 질풍노도와 같은 번뇌의 과정을 거쳤다. 30대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교사로서 성장하는 데 쏟아부었다. 40대의 나는, 교사의 삶은 ‘성취’가 아닌 ‘성숙’ 임을 깨달으며, 나의 한계를 수용하고,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재능과 은사가 열매 맺길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과거의 내가 기대했던 현재의 내 모습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나는 변화하고 있었고, 익어가고 있었다.


‘내가 과거보다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내 삶의 자취에 지금까지 만난 분들의 선의와 도움, 가르침과 모범, 사랑이 여기저기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수업코칭연구소가 있기에 이 공동체가 너무나도 귀하다.


중년 교사가 되었음에도 학교 현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많은 선생님들의 헌신과 애씀에도 사회는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있다. 그럴 때엔, 나의 성장이 하잘것없어 보이고, 나라는 존재의 쓸모를 물으며 괴로워할 때도 있다. 교사 개인의 성장과 노력만으로 학교 현장을 변화시키기엔, 학교라는 곳이 너무나도 거친 정글과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절망 가운데, ‘틈’을 낸다. ‘희망’이라는 틈을, ‘사랑’이라는 틈을.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빛이라도 더욱 빛나고 어둠을 몰아내지 않던가? 나의 ‘탁월함’이 아닌, 많은 이들의 무수한 애씀과 사랑의 결정체인 ‘존재’로서 다시 꿋꿋이 현장에 선다. 세상도, 학교도, 어둠이 만연해 보일지라도, 나의 작은 숨결로, 세상에 온기를 전할 것이다.



과거의 수업, 지금의 수업


교사에게 수업은, 교육의 꽃이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 현장에서, 내 나름대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시간 또한 수업이다. 그렇다면 내 수업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대학교 4학년 교생실습 때의 수업을 돌아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수업안의 발문을 외워, 발문이 틀리지 않도록 온갖 신경을 쓰며 수업을 진행했다. 내 발문에 대한 학생들의 응답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학생들이 대답할 때, ‘다음 발문이 뭐였지?’가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학생들의 대답이 안 들릴 수 있지?’ 혼자서 모의수업을 하는 것과, 실재 수업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모의수업에는 없으나, 실재 수업에 있는 그것은 바로 ‘상호작용’이었다.


나는 이 상호작용을 놓고 꽤 오랜 기간 씨름해 왔다. 수업이 ‘독백’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학생들을 살피고, 듣고자 노력했다. 무엇보다 소통의 출발점은 ‘관계’였다. 돌아보면, 난 이 ‘관계’가 서툰 것이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내 마음에 큰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학생들이 날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거절에 대한 공포는 나를 쉽게 얼어붙게 했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서툴고 서툴던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변화가 가능했는지 되돌아보면, 날 조건 없이 사랑해 준 학생들 덕분이었다. 학생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난 불안과 공포를 조금씩 이겨내고, ‘아, 나는 사랑받는 교사구나.’라는 것을 깨달아갔다.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대해 주시니 요즘에는 힘들거나 슬플 때가 거의 없습니다.”, “저희를 가르쳐 주시고 행복하게, 다정하게 해 주시고 감사해요. 정말 정말 사랑해요.” 이러한 편지를 다시금 읽어볼 때면, 관계에 취약한 나일지라도, 나의 강점은 ‘따뜻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학생들의 사랑의 표현이 나에게 단단한 힘이 되어,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게 한다. 그런 사랑의 경험이, 조금씩 수업에서 경계를 세우는 힘의 기반이 된다.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질서가 바로잡히면, 교실은 창의력이 넘치는 공간이 된다. 서로가 비난하지 않고 배려하고 이해하기에, 수업이 즐겁고 배움이 가득하다. 긴장하지 않기에, 까르르 웃음이 넘친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내 입가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문제는 수업은 정방향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준비도와 관계없이, 그 해 만나는 구성원의 특징, VIP 학생, 학교 문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성숙하고 준비되어 있어도, 외부 요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수업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고, ‘수업은 해도 해도 어렵다’는 말이 있나 보다.


그럼에도, 수업에 ‘틈’을 낸다. 쉽지 않은 수업이지만, 틈 사이로 희망과 사랑, 성찰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작은 창을 내어 마음을 연다. 여러 문제가 많지만, 그 문제에 압도당하지 않고 ‘탐구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내 수업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어떻게 더 깊이 만나고 상호작용할지를 묻고자 함이다. 어렵고 힘든 수업의 과정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 우리가 현존할지를 고민한다.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나누며, 교사도, 학생들도 삶의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에 함께 모색한다. 그 길을 나 혼자가 아닌 동료 선생님과 함께 걸어가길 초대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제보다 1mm 더 자라고 깊어진다.


Edward Hopper, Monring Sun(1952) (c) Columbus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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