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잘 치는 할머니 되기 프로젝트의 시작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라는 책과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퇴근 후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무료했던 어느 날,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우연히 접하고는 홀린 듯 결제하였을 겁니다. 충동구매한 책을 천천히 읽어내려가다 문득 글쓴이처럼 ‘피아노 치는 할머니’를 장래희망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한 때를 기점으로, 저의 ‘피아노 치는 할머니 되기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제 또래의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이면 으레 그렇듯 저 역시 어렸을 적 피아노 학원에 줄기차게 방문 도장을 찍던 아이이긴 하였습니다. 엄마 말로는 제가 그때 피아노를 곧잘 쳤다는데, 엄마의 기억과는 달리 그때의 저는 피아노를 도무지 잘 쳤던 것 같지가 않습니다. 피아노에 대한 그때의 기억이라고는 의무감과 지루함, 압박감 같은 것 밖엔 남아있지 않거든요. 억지로 꾸역꾸역 했던 것을 결코 잘했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 오래 배우지도 않고 학원을 그만두었던 걸로 기억해요.
하지만 피아노는 자꾸만 제 인생에 밀려들어왔습니다. 신나고 기쁠 때 듣는 건 아이돌 노래고 이별 후 듣는 건 슬픈 발라드였지만, 이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저는 늘 클래식에서 찾곤 하였습니다. 이를 테면 밀도 높은 집중이 필요한 시험 기간에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찾아 들었고, 무언가 비장한 마음이 필요할 때에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습관처럼 찾곤 했어요. 그런데 클래식이 점차 제 삶에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나의 열 손가락만으로도 깊은 저음부터 맑은 고음을 모두 아우르는 너무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정말로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된 것이지요. – 아, 이건 처음 시작했을 때의 생각이었고, 피아노의 장점에 대한 요즘 생각은 이전보다 더욱 다채로워졌어요. 순전히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내가 가진 테크닉에 따라 때로는 저음을 고음보다 맑게 낼 수도, 때로는 고음을 저음보다 깊게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바로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저에게 왜 하필 피아노였고 왜 다시 피아노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자문한다면 그건, 피아노가 저의 한낱 비루한 감정들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켜주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회사 생활을 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야 이 세상에 없겠지만 저야말로, 정말이지, 회사 생활 같은 전쟁터에서는 도무지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던 나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짓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상처받았어도 받지 않은 척,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하는 거짓말이 늘어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레슨 날, 제 연주를 들으신 피아노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어머 아라 씨, 이렇게 커다란 감성을 가지고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해요?”
아직 ‘아마추어’라는 말을 듣는 것조차 민망한 한낱 취미생일 뿐이지만, 감히 피아노란 ‘투명한 것’이라고 주장해볼까 합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끝내기까지, 저는 거짓을 마음과 몸에 담을 수 없습니다. 단련해 왔던 거추장스러운 위악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짓과 위악을 품은 채 연주하는 피아노에서는 딱 그만큼의 가짜 음악 이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거든요. 장담컨대 그런 음악은 청자는 물론 연주자 본인에게도 결코 행복을 주지 못할 겁니다.
반면 진심으로 피아노를 대하는 연주자는 단연코, 행복합니다. 그의 진심이 피아노 위에 놓인 악보에는 물론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자 본인, 그리고 연주자의 뒤에서 숨죽여 연주를 듣고 있는 청중에게도 있는 힘껏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연주자는 먼저 악보에 쓰여 있는 음표 하나하나가 말하는 바에 대해 진심으로 경청하고 소통하여 최상의 곡 해석을 마음속에 품어둡니다. 그 후에는 그 해석을 음악이라는 최고의 파동으로 변환하여 자신은 물론 청중들의 마음을 감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건반을 누릅니다. 이때 최고의 파동을 위해 움직이는 온몸, 그러니까 악보를 보는 눈과 건반을 누르는 손, 페달을 밟는 발 중 그 무엇도 지금 이 순간 어떠한 위선이나 위악을 행할 겨를이 없습니다.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은 오로지 음악이므로, 거짓이 들어찰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심을 다해 음악을 빚는 과정에 위선이나 위악을 지우니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나의 투명한 감정뿐이었습니다. 이를 테면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연주하면서는 어느 시골길 싱그러운 초록 속에서 어떠한 걱정도 슬픔도 없이 해맑게 뛰노는 어린아이를 떠올렸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로 유명한 ‘인생의 회전목마’를 연주할 때에는 어쩐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자, 울고 싶지만 결코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 흘리지 않기로 다짐한 어느 몰락한 제국의 마지막 공주가 되어 그녀의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더랬습니다. 아직 잘 되지는 않지만 쇼팽의 ‘녹턴’ 2번을 연주할 때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청아하지만 결코 얕지는 않은 슬픔의 깊이를 표현하고 싶고요, 다음으로 연주하게 될 브람스의 ‘인터메쪼’는 젊은날 상실의 크나큰 슬픔을 그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것 말고는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어느 중년 신사의 무력한 슬픔을 빌어와볼까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간 거짓이라는 가면을 씌우고 꼭꼭 숨겨왔던, 이제 피아노의 투명함을 통해 비로소 표현하고 싶어진 저의 감정이란, 줄곧 슬픔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는 슬픈 시를 쓰는구나
슬픔이 시가 되었으니 안 슬퍼야 할 텐데
시가 된 슬픔은 어느 다른 나라로
잠시 여행을 간 거야
어느 날 건강히 다시 돌아올 거란다.”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라는 어여쁜 제목을 가진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 <일요일>의 일부입니다. 어쩌면 이 시의 화자에게 ‘시’가 있는 것처럼 저에게는 ‘피아노’가 있어주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피아노를 치는 저는 이제 슬픔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음악으로 만들어 ‘어느 다른 나라’로 잠시 ‘여행’ 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멋진 음악이 되어 떠났기에, 언젠가 저에게 다시 돌아올 슬픔은 분명 건강한 모습이 되어 저에게 인사를 건네겠지요. 건강한 슬픔과 반가이 인사 나눌 저는 분명, 조금이나마 더 깊어져 더욱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다시 피아노, 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저는 지금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