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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Oct 25. 2024

깊이에의 강요

글을 쓸 수 없다고 쓰는 글

야 하는 소설과 들어야 할 음악 

새기고 싶은 시는 많아지는데 

꼭 그만큼, 하고싶은 말은 내게서 더욱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나의 글은 가벼워선 안 돼, 

다시금 움직이려는 내 손을 묶는 건 늘 나였다


내 글은 깊이가 없어, 

표류한다는 생각도 꽤 예전에 했던 것 같은데 

- 사실 생각이 깊어지지 않은 건 맞지


깊이 있고 진중한 글을 쓰기 전까지 

나에게서 나오는 가볍고 깊이 없는 글에 맞서낼 용기가 없어서 그만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어졌다




일을 하지 않는데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어서, 다리를 다치고 난 이후 3개월여를 지루하고 더디게만 보낸다. 그런데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고꾸라지는 것보다도 훨씬 더 불안하기만 하다. 목표를 잃어버린 경주마가 된 느낌이랄까. 


목표를 잃어버렸다. 

십여 년간의 꿈이라고 생각했던 철학 공부를, -이번 심사에 가건 못 가건, 붙건 안 붙건- 다시는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아무 공부였고 철학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학교라는 집단에서 가장 빛나고 싶은 욕심 가득했던 아이, 욕심을 열정으로 착각한 아이였을 뿐. 정말 내가 철학 공부에 투신했는지는 ..... 이 다음 말을 망설이게 되는 걸 보면, 나는 철학을 후회없도록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아무래도 아니었던 것 같다. 


- 아직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도덕성' 같은 말을 보면 설레는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기로 하자 


나라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단어와, 몸이 사랑하는 먹고사니즘은 모두 다 너무 달라서 

부대낀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나. 


건강하지 못한 몸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나인 것처럼

건강하지 못한 단어를 배설하는 나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나인 것을 알기에 

이런 글을 쓰는 손을 조심히 감추어 본다. 


의외의 자본주의에서 적성 비스무리한 것을 찾아 우연히 먹고살게 되었지만 

의외로 아직도 조금의 실마리도 얻지 못한 글의 목적지, 

이제 어디로 흘러가 살면 될까?


- 도덕성과 자본주의의 공존가능성, 뭐 이런 것이 궁금한 나를 나는 이제 미련없이 버리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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