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을 사랑하는 사서교사 모임을 뒤돌아보며
2023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낭독을 매개로 경기도 내에 기간제 사서교사 선생님들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기간제 사서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단톡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사서 선생님이 1년 장기코스로 낭독을 배워보자고 제안하셔서 총 20명의 사서교사들이 모였다.
사실 나는 학창 시절 특별한 꿈이 있지는 않았다. 사서 고생하는 사서로 15년 차 밥벌이를 하면서 20대 초반에 성우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고, 내 목소리의 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늘 마음속 한편에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낭독을 배워보자는 선생님의 제안에 한 치의 고민 없이 신청하게 되었다.
2023년 3월 6일 월요일 오후 7시에 첫 수업은 줌으로 이루어졌다. MBC 성우 출신 ‘조예신’ 강사님으로부터 [보이스 컬처]라는 연수명으로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줌으로 만나지만 함께 수강하는 20명의 사서 선생님들은 각기 다양한 목적과 목표로 낭독 수업에 참가한 이유에 대해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우님이 매 수업 시간 낭독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점은 자세라고 알려주셨다.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기 위해서는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렇지 못하면 척추를 지탱시키기 위해서 근육이 긴장을 하게 되고 이런 긴장과 경직이 목소리의 통로를 방해하고 차단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그로 인해 아래쪽 척추가 약해지면 배 근육이 몸통을 떠받치게 되는데, 이렇게 배 근육이 몸을 받치게 되면 호흡이 자유롭지 못해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낭독의 기본자세는 발을 11자로, 어깨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양발에 무게의 중심을 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이때 무릎을 약간 구부리는 것이 빳빳하게 선 상태보다 발성에 더 좋다. 가수 박정현도 이런 자세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추천했다고 들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세를 편안하게 바른 자세로 앉은 뒤에는 숨을 자연스럽게 쉬면서, 발성할 자세를 취한다. 오른손을 배꼽 위에 올려두고 왼손으로 빨대 모양을 만들어서 입 가까이에 갖다 대고 숨을 넣고 불면서 뱃고동 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직접 실습해 보았는데 소리가 퍼져 나가는 것이 평소와는 달랐다. 낭독할 때에도 이런 자세를 유지하면 순간 집중력도 좋아지고 발성도 개선된다고 한다.
월요일 퇴근 후 3시간 동안 수업을 듣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은 즐겁고 유익했다. 성우님은 매일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한 페이지 정도를 낭독하며 핸드폰으로 녹음해 보고,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추천해 주셨다. 그래서 수업을 듣고 나서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핸드폰을 켜고 녹음을 하고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으로 시작해서 현재까지 100개가 넘는 녹음파일이 매일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나는 새벽형 인간이라 늘 오전 5시에 기상하는데 아침 루틴에 낭독이 들어가니 무언가 일상이 더 풍요로워졌다. 낭독하며 발견한 좋은 시나 글의 문구들은 가족 단톡방과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 목소리가 이랬어?” 라며 의아해하는 친구도 있었고,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의 피드백들도 있었다.
작년 어버이날 아침에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녹음해서 카카오톡으로 음성파일을 보내드렸다. 아버지의 답장은 딸의 목소리가 따뜻하고 위로가 되어 눈물을 흘리셨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때로는 진심이 담긴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낭독 연수를 받으면서 낭독을 통해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같은 글이라도 낭독자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낭독을 배우면서 글을 좀 더 섬세하게 읽게 되었고, 내가 낭독하는 글로 주변인들에게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끝까지 함께한 총 12명의 사서 선생님들에게 고맙고, 감사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사서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12명의 사서 선생님들은 내가 만났던 어떤 선생님들보다 열정이 넘치시는 분들이었다. 낭독 연수를 통해 배운 낭독을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 시간에 직접 활용하신 분들도 있었고, 도서관 행사에 시낭송이나 책의 한 문장을 낭독하는 행사로 운영하기도 했다. 학부모회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강사를 초빙하여서 낭독 연수와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한 강연회를 운영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진로 탐색 과정으로 성우님을 초빙하여서 낭독을 직접 실습해 보는 등 진로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분도 있었다.
올해 4월부터는 자발적 모임으로 낭사모(낭독을 사랑하는 사서교사 모임)로 그 인연들을 이어가게 되었다. 함께 1년 동안 낭독을 배웠던 사서 선생님들과 매주 월요일 저녁 줌으로 만나서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서 한 시간 반 동안 릴레이로 낭독하고 있다.
‘긴긴밤’(루리 지음)과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지음), ‘낭독을 시작합니다’(문선희 외 글) 3권의 책을 함께 낭독하면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책을 읽어 나가니 낭독의 기본기도 복습할 수도 있고,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 한 권을 완독 하면 재능기부의 형태로 선생님들의 수업 노하우와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생성형 인공지능 관련 연수도 해주셔서 낭독을 넘어서서 다양한 수업 관련 정보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낭독이라는 취미를 넘어서서 사서교사의 부캐로 ‘북 내레이터’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유튜브 ‘책 읽어주는 사서샘’이라는 채널명으로 그림책을 읽어주는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다. 앞으로는 글도 직접 써서 내가 쓴 글이나 시를 낭독해서 콘텐츠를 올려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사실 혼자서 낭독을 시작했다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낭독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하는 사서 선생님들과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공동체가 있었기에 1년이 넘는 시간을 낭독에 빠져 지낼 수 있었고, 낭독의 즐거움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낭독을 시작합니다.」라는 책에 문성희 성우님이 쓰신 이런 문장이 있다. “너무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늦었다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진짜 늦은 거지요. 낭독을 잘하는 비법 중의 하나는 꾸준히 즐기는 것이라고 늘 말합니다.”
이제 나에게도 낭독은 꾸준히 즐기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언제 시작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남들이 뭐라든 내가 즐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낭독을 함께 즐기고 있는 낭사모(낭독을 사랑하는 사서교사 모임)가 있기 때문이다.
하반기에는 선생님들과 그림책으로 낭독극을 만들어서 함께 공연도 해보고, 나중에는 재능기부 형태로 전국의 학교를 찾아가며 낭독극 공연을 펼쳐보고 싶은 바람도 있다. 혼자라면 천천히 걸어가거나 중도에 포기하겠지만 함께라면 천천히라도 멀리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