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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스 Feb 08. 2023

고국의 향기

한식당이 나에게 준 선물

 압력밥솥으로 갓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흰쌀밥을 한 숟갈 떠먹는다. 다음은 김치찌개. 푹 익은 김치와 함께 큼직한 삼겹살을 한 입에 넣으면 고기의 묵직한 식감과 김치의 새콤 매콤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그것이 바로 내 입속에서 울려 퍼지는 현악 이중주이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맞다, 나는 밥심으로 산다. 한식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어느 정도로 밥을 좋아하냐면 가족이 아침으로 빵을 먹을 때 나 혼자만 밥을 먹는다. 전국의 빵 애호가들을 나에게 말할 것이다. 아니, 빵을 놔두고 아침에 김치찌개를 먹는다니! 그들에게 나는 지탄을 받을 게 뻔하다. 그러나 나는 밥이 주는 묵직함이 좋다. 아침에 빵을 먹고 나면 공부할 때 금방 배고파지는 느낌이 들어 빨리 점심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힘이 불끈 나는 느낌이 든다.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라고나 할까.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가 출국 1주일 전부터는 식생활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아, 나는 한식을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앞으로 아침에는 어머니가 해준 맑은 소고기뭇국과 상큼한 무생채를 먹을 수 없다. 점심에는 학교 앞 단골 식당에서 제육볶음과 서비스로 나오는 계란 프라이를 먹을 수 없다. 날이 추워진 저녁에는 뜨끈한 감자탕 국물을 떠먹을 수 없다.


 이런 내가 영국에 온 이후로 빵을 먹고 있으니 혼자서 웃음이 난다. 어이가 없어서. 물론 빵도 맛있다. 하지만 아무리 빵을 먹어도 말로 참 설명하기 힘든 허전함이 있다. 무엇을 먹어도 해소가 안 된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국에 왔다면 천국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유럽은 빵이 주식이니까.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빵을 파는데 빵 진열대가 우리나라의 웬만한 빵집의 규모를 넘어선다. 그러나 나는 한식파이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무너져버렸다. 못 참겠다, 한식당을 가야겠어!


 한식당에 들어서니 내 눈에 청사초롱과 우리나라의 소주병, 맥주병이 들어왔다. 메뉴판을 받았더니 한글이 쓰여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계속 신기해하면서 가게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있던 와중에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에픽하이의 노래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들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산’이 흘러나왔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되다니. 노래가 끝날 때까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갔던 한식당의 내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인 순두부찌개를 시켰으나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일단 국물이 맵지 않았으며, 찌개 안에는 칵테일새우와 양송이버섯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비록 한국의 맛과 조금 달랐지만 밥과 국물을 먹으니 참으로 행복하다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밥을 먹으니 위로를 받는 느낌도 들었다. 이제는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와 영어뿐인 길거리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어딜 가도 한국인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식당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따뜻하고 포근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애국심이 별로 없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면서 열광할 때 빼고. 군대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법적으로 가야 한다고 하니 별생각 없이 간 것이다. 그리고 외국의 것을 멋있어했다. 핸드폰은 아이폰을 쓰고 있으며 팝송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선망해 오던 공간에서 6개월 영국남자로 사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됐다. 이방인이 되어보니 오히려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느껴진다. 한국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든 게 반갑고 웃음이 난다. 그리고 날 편안하게 해 준다. 한식당에서 보낸 잠깐의 시간은 나에게 큰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이제야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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