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난 107동에 살았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으면 106동과 107동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과 느낌이 다른 "야~ 놀자"라고 샤우팅 몇 번 하면 할거 없던 친구들이 창문을 빼꼼히 내다 보고는 나올 준비를 하거나 부모님한테 붙잡혀서 후두부를 강타당하고 감금당하곤 했다. 보통 감금당하는 친구들 부모님은 노는 소리가 들릴까 봐 학교 운동장 가서 놀으라곤 하셨다. 아마도 공부 열심히 하는 자식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신 모양인데 당시 어린 마음에 그 집에 테니스 공을 마음껏 던지며 친구의 마음을 흔들어 봤다.
난 부서 총무를 3년째 맡고 있다. 총무가 하는 업무는 부서 회식 일정 잡기, 메뉴 선정, 식당 선정, 각종 소모품 구입 및 작업복, 안전화 사이즈 조사 등등. 그냥 취합이 거의 90%다.
그래도 이왕 하는 거 1년만 부서를 위해 열심히 하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부서원들의 영혼 없는 칭찬에 힘입어 3년째 총무 업무를 하고 있다.
아마 다른 분들이 다니는 회사 총무들은 보통 막내를 시키는 거로 알고 있는데 우리 부서는 그러면 막내들이 곧장 짐싸고 퇴사할 수 있다며 지양하고 있는 중이다. 막내들 화이팅 이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냥 대충 위에서 지시한 거 전체 메일 뿌려서 취합하고 재전송하면 되는 줄 아나 본데 절대 아니다. 회식 장소나 메뉴도 그냥 내 마음대로 절대 정할 수 없다.
요청 메일 하나 보내서 그 날 모두 접수되면 그날은 나를 위한 몰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런 날은 거의 없으며, 항상 의견을 묻지만 의견이 안 와서 내 마음대로 했다가 온갖 잡소리 들은 적도 여러 번이다. 답장이 오지 않으면 휴대폰으로 연락한다. 그러면 항상 대답은 똑같다.
"아이쿠. 내가 보자마자 바로 보내려고 했는데. 보내려고 하는 찰나에 업무가 생겨서 못 보냈어" 라고. ㅉㅉ
총무가 그렇다.
오늘도 작업복 사이즈 확인차 부서 전체 메일을 보내서 금일 17시까지 주세요 했는데 총 40명 중, 13명이 답을 주셨다. 괜찮다. 그냥 지금부터 전화 돌려서 일일이 상담원이 되면 아마 오늘 저녁 9시 내로는 퇴근이 가능할지 않을까 싶다.
밖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엄청 퍼붓고 있다. 지금 밖에 우산 쓰고 나가봤자 모발만 좋아할 뿐, 나머지는 온통 젖을 거다. 회신 안 한 사람들. 당신들 집에 못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