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찰의 불편함.
때로는 진지하게 인생을 설계하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걸 느꼈을 땐 설계된 인생의 출발점도 지나가지 못한 시점에서 였다.
설계한지는 몇 년이나 지나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설계라는 것에 대한 대단한 지표를 가지고 있다.
일단은 계획적이지 않은가.
그만큼 뒤따르는 희생과 필요한 재료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은 시점에서는 출발부터가 무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 그대로 낭떠러지로 회귀한다.
태초에 낭떠러지서부터 시작된 삶은 기어올라 정상에 도달한 뒤 다시 낭떠러지로 스스로 기어들어간다.
시작점부터가 다른 우리 내 인생에서, 뭐가 더 크고 작은 지는 눈대중으로 대충 둘러보고는
안일하게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나 자신을 설득한다. 그러나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나 자신은 이미 나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한계점 언저리에서만 놀뿐이다.
그게 마치 내 인생의 모든 이중적인 잣대를 들먹 일수 있는 척도인양
그렇게 그 언저리주변에서 맴돌며
내 인생을 관찰하고 남 인생을 시기하며 내 인생을 관찰하고 남 인생을 괄시한다.
이 얼마나 위태로운 세상살이인가.
나의 안일함은 술에서 나온다. 음악에서 나온다. 한밤중 볼을 때리는 그러나 아프진 않은 바람에서 나온다.
멍청하게 가만히 서서 그렇게 겨울을 맞고 있는 도중에 문득 떠오른다.
아 인생이란!
나는 귤을 먹고 소주를 마시고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일을 한다.
바닷가를 걷고 공원을 산책하고
사랑을 하고 수다를 떤다.
모든 게 나의 한계점 언저리에 머물러있는, 절대로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에서 나오는 행동들.
한심하고 행복하다.
우울할 때도 한쪽 구석엔 꼭 하나의 행복을 남겨둔다.
그래야만 내일도 산다.
오늘의 자기성찰의 결론 - 나는 우울하지만 행복한 인간.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 병신 같은 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