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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Feb 01. 2023

다시 책으로 돌아갑니다.

nlp 이야기

2019년도 3월에 nlp 코칭을 접하고 충격받은 것 중 하나는 감각의 균형이 무너져 있다는 거였다.

시각, 청각, 촉각 중 청각을 선호하는 나는 거기에 더해서 언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 삶을 돌아보니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평소 길을 다닐 때도 내 강의 녹음한 걸 듣거나 다른 강의를 듣는다.

매일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할 일을 빼먹은 듯한 기분이 든다.

TV는 잘 보지 않고 괜찮은 드라마가 나오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루이틀 시간을 내서 몰아 보는 게 취미다.

유튜브는 거의 보질 않았고, 동영상을 보더라도 영상을 보기보단 소리만 들을 때가 많았다.


습관이란 무서워서 얼마 전 남편이 권해준 영상이 있기에 핸드폰으로 보았다.

남편이 날 보더니, "왜 세로로 봐? 옆으로 보면 편한데. 되게 불편하게 보네." 한다.

"난 댓글을 먼저 보는데, 자긴 댓글 안 봐?"

"아니. 난 영상만 보는데."

댓글도 옆으로 볼 수 있긴 한데 어차피 영상 보는 게 목적이 아니어서 옆으로 돌리는 수고를 하기 귀찮은 거다.

그때도 시각을 선호하고 언어를 비선호하는 남편과의 차이를 느끼고 깜짝 놀랐다.


언젠가는 같이 유튜브를 본 적이 있는데, 남편이 이것저것 누르는 걸 보던 나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다가 가죽공예를 보다가 요리를 보는 식이다.

맥락 없는 시청 방식에 정신이 사나워 물었다.


"유튜브를 원래 이렇게 봐?"

"뭐가?"

"나는 요리면 계속 요리 영상만 보거든. 근데 자기는 전혀 상관없는 영상들을 보길래. 정신 안 사나워?"

"난 이렇게 보는데?"

"그렇게 보는 이유가 있어?"

"별생각 없이 보는 건데?"


남편의 언어 습관도 그렇다. 맥락을 쭉 따라가지 않고 이 말하다 불쑥 다른 말을 하는 식이다.

내가 얘기할 때도 갑자기 생뚱맞은 말을 꺼내서 황당하게 할 때가 많다.

나는 남이 내 얘기를 툭 끊어 먹으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는 데다 흐름이 뚝 끊겨 기분이 나빠진다.

대화 방식이 다르다는 건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건데, 언어 습관 때문에도 남편과 자주 다퉜다.




내가 어떤 선호감각을 쓰는지 안 뒤로 발달한 감각보다 다른 감각을 키우고자 노력을 많이 했다.

녹음한 거 듣기를 딱 끊었고, 책도 거의 보지 않았다.

잘 보지 않던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고, 넷플릭스도 즐겨봤다.

길을 다닐 때 주변을 잘 보지 않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는데 일부러 주변에 뭐가 있는지 둘러보면서 그걸 보았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일일이 기록했다.


사람 얼굴을 기억 못 하던 게 시각을 비선호해서 그랬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시각에 취약하니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내겐 과한 정보로 인식되는 거다.

그걸 안 뒤로는 사람을 유심히 살피며 특징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피로도가 심해지는 것도 시각이 약해서이고, 현란한 색상이나 복잡한 무늬 같은 건 최악이다.

상대의 표정이나 안색이 나쁜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말투나 목소리 톤이 안 맞으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마디로 비주얼보단 보이스에 더 큰 영향을 받는 편이다.

감각이 왜 중요하냐면 세상을 인식하는 첫 단계가 바로 감각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감각으로 상황을 인지하느냐에 따라서 감정과 사고에 영향을 받는다.


남편과는 반대 성향이라, 이걸 몰랐을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유튜브 보는 습관 하나도 이렇게 다른데 다른 건 말해 무엇하랴.

무엇보다 가장 이해 안 됐던 건 책을 안 읽는다는 거였다.

영화나 유튜브는 많이 보면서 책을 는 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마다 선호감각이 있듯이, 언어도 선호와 비선호가 있다.

나는 그때까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책을 보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선호하는 게 다르다고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책을 많이 보는 사람과 안 보는 사람의 차이가 확연히 갈리긴 한다.

내 기준에선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어휘력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

실제 말을 잘 못하거나 어휘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을 많이 읽느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책을 거의 읽지 않든지 오래 읽지 못한다. - 말이 많은 것과 말을 잘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분들의 특징이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질 않는다. 청각이 약한  것이다.

청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언어를 선호하는 것도 시각보다 청각이 더 발달해서 그런 것 같다.


언어와 친하고 강한 건 엄청난 무기다.

독서를 장려하고 문해력을 키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언어는 소통과 직결된다.

언어를 모르면 소통할 수 없듯이, 언어 구사 능력은 삶의 질을 높인다.

언어 구사 능력을 키우려면 잘 듣는 연습을 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게 도움이 된다.




처음 감각을 바꾸는 훈련을 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일부러 책을 안 읽고 보지도 않던 유튜브를 보려니 괴로웠다.

내가 강의한 걸 늘 녹음해서 수도 없이 모니터링하던 사람이  일부러 귀를 닫고 다른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니 뚝딱이가 된 것처럼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소설을 쓰는 게 직업이던 내가 약 2년간 작품 활동을 못했던 것도 이때의 영향이 크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일을 전혀 못하기에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이것저것 동시에 해보는 훈련을 했다.

역시나 힘들어 죽을 뻔...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살려니 아기가 첫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안하고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는 거다.

책 보던 시간이 유튜브 보는 걸로 바뀌더니, 어려운 책도 보던 사람이 글자가 보기 싫어졌다.

예전처럼 글자가 머리에 입력이 잘 안 되는 걸 느낀 뒤로 습관의 무서움을 찐으로 경험했다.


2019년 이전에 했던 것까지 합치면 NLP를 한 지가 올해로 8년 차다.

그리고 작년 여름부터는 다시 웹소설을 써야겠다 마음먹었고, 올해는 다시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예전엔 1년에 50권을 목표로 읽곤 했는데, 올해는 그렇게까진 못 읽더라도 한 달에 기본 2권은 읽으려고 한다.

저녁에 유튜브를 보는 대신 책을 읽으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다시 책을 읽으려고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유튜브를 보면 재밌긴 한데 크게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

보고 나면 허무해지기 일쑤인 데다 시간 낭비했단 생각이 많이 든다.

교육적이고 인사이트 넘치는 동영상도 많지만, 영상으로 보는 것보단 책에 있는 글자를 보는 게 머릿속에 더 잘 각인되는 편이다.

이 또한 언어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언어를 읽고 쓸 줄 안다는 거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나.

인생의 길이 책 안에 있다는 말이, 요즘따라 절실히 가슴에 와닿는다.

선호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라 의식하고 노력하면 계발되긴 하나 참 쉽지 않다.

시각과 청각을 함께 타고난 사람이 봉준호라니, 그가 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부족한 감각을 키우면 내게 큰 무기가 된다.


감각 키우기 훈련을 하면서 색다른 경험도 많았고 얻은 것도 많지만, 이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게 더 유익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쪽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처음으로 돌아간다고는 했지만, 이전의 나와는 다를 거다.

이미 다른 감각을 많이 깨운 상태라 완전히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 또, 이전으로 돌아가서도 안 된다.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것.

그게 올해의 목표다.

그걸 위해서 다시 책부터 시작해 언어와 친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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