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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영 May 07. 2020

2급 발암물질은 1급 발암물질보다 덜 위험한가요?

국제암연구소(IARC)는 어떻게 발암물질을 분류하는가

앞서 국제암연구소가 흡연과 간접흡연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고 했지요? 1급 발암물질이 있다면 2급, 3급 발암물질도 있다는 얘기일까요? 맞습니다. 그럼 2급 발암물질은 1급 발암물질보다 덜 위험한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국제암연구소에서는 발암물질로 의심되는 화학물질이나 생활습관 등이 있으면 전문가들이 모여 관련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발암물질 여부를 판단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해당 물질을 4개의 그룹으로 구별하는 것으로 결론을 냅니다.



첫번째 그룹(Group 1)은 "발암물질임이 확실한" 물질을 말합니다. 뉴스에서 "1급 발암물질"이라고 소개하는 물질들이지요. 두번째 그룹은 다시 둘로 나뉘는데, 그중 첫번째(Group 2A)는 "아마도 발암물질일 것으로 판단"되는 물질을 말하고, 나머지(Group 2B)는 "발암물질일 수도 있는" 물질을 말합니다. 세번째 그룹(Group 3)은 "발암물질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물질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번째 그룹(Group 4)은 "발암물질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물질입니다. 눈치채셨나요? 그룹을 나누는 기준은 얼마나 지독한 물질인지가 아니라 그 물질을 발암물질이라고 볼 근거가 얼마나 확실한지라는 점을 말이에요. "1급 발암물질"이라는 표현이 주는 느낌 때문에 1급 발암물질이면 2급 발암물질보다 더 위험한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1급 발암물질은 2급 발암물질보다 암을 일으킨다는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 뿐이랍니다.


몸의 각 부위별로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을 표시한 도표


국제암연구소는 이런 보고서를 만들 때 아주 다양한 종류의 연구결과들을 참고합니다. 앞서 담배의 해악을 밝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얘기했던 환자-대조군연구나 코호트연구는 물론이고 생태연구(ecological study), 임상사례연구, 동물실험결과 등도 검토합니다.



생태연구란 연구대상이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인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국가별로 1인당 고기 섭취량과 대장암 발병률을 조사해서 1인당 고기 섭취량이 많은 국가에서 대장암 발병률이 높다는 결과를 보이는 식이지요. 이런 종류의 연구는 비교적 쉽고 빠르게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장암 발병률이라든가 1인당 고기 섭취량 같은 자료는 각국 통계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니까요. 코호트연구처럼 큰 돈을 들여서 오랜 시간동안 자료를 모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부정확하기 쉽습니다. 유럽 여러 도시를 비교해보면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일수록 관상동맥질환 발병률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개개인의 소득 수준과 관상동맥질환 발병여부를 살펴보면 반대로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이 관상동맥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생태연구의 결과만 놓고 판단해서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지요. 생태연구에서는 개개인 수준의 자료 없이 집단 수준으로 뭉뚱그려진 자료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런 오류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하고자 하는 요소 자체가 개개인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생태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주로 환경오염이라든가 사회구조적인 요소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마을에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암에 더 잘 걸리는지를 연구한다든가, 사회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든가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핵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지 여부나 사회경제적 불평등 정도는 그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요소이므로 개개인 단위에서 연구를 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개개인 수준의 자료를 얻기가 아주 어려운 경우에 생태연구가 유용합니다. 식생활에 관한 연구가 특히 그런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거든요. 앞서 언급한 1인당 고기 섭취량과 대장암 발병률 연구를 예로 들어볼까요? 한 해 동안 고기를 얼마나 먹었는지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식사 일기를 쓰는 게 좋겠지요? 하지만 1년 동안이나 꼬박꼬박 식사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설령 쓴다 하더라도 내가 점심에 먹은 불고기가 소고기 몇 그램이었는지 정확하게 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식생활과 관련한 연구에서는 통계자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판매된 고기가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니까요. 그 값을 사람 수로 나누면 1인당 고기 섭취량의 근사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국제암연구소가 다양한 종류의 연구결과들을 참고할 때에는 연구방법 별로 장점과 단점을 고려해서 판단을 달리합니다. 생태연구보다는 환자-대조군연구가, 환자-대조군연구보다는 코호트연구가 더 믿을 만하다고 평가합니다. 코호트연구보다도 더 강력한 근거를 제공하는 연구방법은 무작위대조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입니다. 환자-대조군 연구에서처럼 특정 위험물질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는 연구방법인데, 가장 큰 차이는 노출 여부를 무작위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환자-대조군 연구에서는 환자군과 대조군이 연구대상인 특정 위험물질 노출 여부 외에도 다른 건강상 차이가 있는 경우에 옳지 못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무작위대조시험에서는 노출 여부를 무작위로 결정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국제암연구소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검토하는 연구결과들 중 무작위대조시험은 거의 없습니다. 발암물질로 의심되는 물질을 가지고 무작위대조시험을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무작위대조시험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신약개발 과정에서입니다. 이 경우에도 무작위로 참가자를 나누는 것이 비윤리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새로 개발된 항암제를 가지고 무작위대조시험을 하는 경우, 암환자인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둘로 나누어 한 집단에게는 항암제를 주고 다른 집단에게는 약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연구를 한다면 약을 주지 않는 집단에 속하게 된 암환자의 치료 기회를 빼앗는 셈이 되어 비윤리적인 연구가 됩니다. 약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사용하던 항암제를 주어서 새로 개발된 약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비윤리적이라는 문제 이외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공기오염이나 직업환경 같은 경우 노출 여부를 인위적으로 결정하는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작위대조시험 결과 없이 코호트연구, 환자-대조군연구, 생태연구에서처럼 연구자가 참가자의 위험물질 노출 여부에 개입하지 않고 관찰한 결과만을 가지고 A라는 물질이 B라는 질병의 원인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를 고려해야합니다. A 노출이 B 발병에 미치는 효과가 강력하게 관찰될수록 A와 B 사이에 실제로 인과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자에 비해 스무배쯤 높은데, 이쯤되면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고 믿을 만 하겠지요. 국제암연구소가 흡연과 같은 그룹으로 분류한 가공육의 경우, 하루에 100그램씩 섭취하면 직장암에 걸릴 확률이 0.2배쯤 높아진다는 관찰결과에 비하면 흡연이 폐암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감이 오지요? A에 노출되는 정도가 클수록 B 발병률도 커지는 경우 더욱 믿을 만한 근거가 됩니다. 같은 흡연자라도 하루에 한두 개피 피우는 사람보다 하루에 한 갑씩 피우는 사람이 폐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에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결론이 큰 설득력을 갖는 것이지요. 가공육 섭취량과 직장암 사이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관찰되었습니다. 가공육을 하루에 100그램씩 먹는 사람이 안 먹는 사람보다 직장암에 걸릴 확률이 0.2배 높고, 200그램씩 먹는 사람은 100그램씩 먹는 사람보다도 직장암에 걸릴 확률이 0.2배 높았습니다. 가공육 섭취가 직장암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겠지요.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A가 B의 원인이라는 결과가 나타나는지도 봐야합니다. 서로 다른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연구한 결과가 모두 A가 B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가리키는 경우, 여러 연구 결과가 들쭉날쭉한 경우보다 훨씬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코호트연구, 환자-대조군연구, 생태연구 등 서로 다른 방법으로 연구한 결과가 서로 비슷한지, 여러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지, 동물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지 등도 따져봅니다. 물론 동물실험 결과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물질이 어떤 동물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까요. 인종적 특성 때문에 같은 물질이라도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A가 B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왜 그런지를 아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설득력이 강해 집니다. 여러 동물실험 결과 고기를 높은 열로 익힐 때 생성되는 화학물질들이 몸 속에서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암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해서 국제암연구소에서는 가공육 섭취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습니다. 가공육을 많이 먹으면 직장암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붉은 고기 섭취는 두번째 그룹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붉은 고기를 많이 먹으면 직장암 발병률이 증가한다고 아직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두번째 그룹에 속했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모이면 1급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간접흡연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 연구결과가 축적된 후에야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되었습니다. 커피는 세번째 그룹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연구결과가 들쭉날쭉해서 발암물질인지 아닌지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네번째 그룹으로 분류된 물질은 거의 없습니다. 네번째 그룹은 해당 물질이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믿을 만하다는 뜻인데, 이미 발암물질로 의심할 만한 이유가 상당한 경우에 국제암연구소가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놀랍지 않은 일이지요. 2019년 1월에 국제암연구소는 네번째 그룹을 분류 항목에서 아예 삭제했습니다. 어떤 물질이든 네번째 그룹으로 분류될 일은 영영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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