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를 버는지가 기준일까?
최근에 백수 구직자의 삶을 살면서 반강제적으로 집안일을 도맡고 있는데,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어서 시간이 많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없다. 구직 활동도 하고, 스터디나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공연도 보고 산책도 하고 나름 이런 저런 일들도 하고 있는데, 어느 한 편으로 굉장히 가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우울해졌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고민을 해봤다. 나는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과거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던 나와 비교해 봤을 때,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그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얼마나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서 정해지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서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깨달았다. 사실 가치라는 것은 꽤나 주관적인 것이다. 어떤 일, 관계, 사물 등을 '가치있다' 또는 '가치 없다'라고 느끼는 것은 개인의 선호와 판단의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통용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어버린다. (물론 무조건 돈이 되는 일이라고 해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버는 것은 보편적인 사회적 판단에 의거하면 가치 있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명제에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과연 같은 가치를 갖는 것일까?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사는 사람과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 있다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사는 사람의 가치가 연쇄살인범보다 더 높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한 사람과 수십만 명을 살릴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한 사람 중에서 더 가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재미있는 점은 만약 개인적인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가치는 훨씬 주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특정한 사람과 그 주변의 인간 관계는 가치에 대한 비중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가족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에게는 유명 인사보다 중요한 사람인 경우가 있다. 나에게 선택지가 있을 때 알지도 못하는 선한 중요 인물을 구하기 보다는 그냥 내 주위의 평범한 소중한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스스로 느끼는 무가치함에서 벗어나려면,
(1) 내가 돈을 빨리 벌든가
(2) 아니면 관계로 풀어서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껴야
해결이 될 것 같다.
하지만 (1)은 쉽지 않은 현실이고, (2)는 나라는 인간은 안타깝게도 그다지 관계 지향적인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다. 남편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고 부모에게 중요한 딸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내가 스스로 느끼는 나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좋은 말로 말하면 나는 꽤나 나와 타인을 객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나는 '니 새끼는 너한테나 예쁜거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저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 자체로서는 크게 행복해지는 것은 없다. 사랑을 받는다는 기분은 인간을 우쭐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게 나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생각은 안 한다. 나는 내 부모나 내 남편한테나 예쁜 인간이지 그게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 아닌 걸 아는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또 다른 내 특징은 대체적으로는 인간을 신뢰하는 사람이지만 의외로 가까운 사이에 깊숙히 들어가게 되면 인간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사람일 수록 나와 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그들은 나에게 가장 좋을 결정을 추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인간 불신에 걸려서일 수도 있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고 나도 이기적인 내 모습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스스로 깨달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이면 더 머리가 아파진다.
결국 내가 스스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나를 회사로 비유하자면 내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나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는 수밖에. 긍정적으로 마무리해보자면, 내가 항상 말하듯이 '인생은 죽기 전까지 모른다'이다. 아직 장이 마감되려면 한참 남았다. 나라는 사람의 주가가 올라갈지 내려갈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