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둘의 내가 여덟 살의 나에게
아이에게
간만에 네가 쓴 일기를 읽었어. 난 이제 조그만 글씨로 서너 페이지씩 일기를 쓰는, 스물둘의 어른이 되었단다. 너는 모르는 곳이지만 영재학교도 졸업했고, 네가 늘 꿈꾸던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어. 멋지지? 봄마다 벚꽃이 예쁘게 피는 캠퍼스 북쪽을 거닐다 보면,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휴보를 만드는 곳을 가끔 지나. 그럴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다 문득 네가 떠올라 미소를 짓곤 해. 어떨 땐 괜히 눈물도 나더라. 기뻐서 운다는 어른들의 말이 이런 건가 봐. 나는 너의 꿈속에 살고 있거든.
기대했을 것 같아 미안하지만, 로봇을 만들고 있진 않아. 더 재밌는 일이 생겼거든. 이해해줘,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정말 많잖아. 그리고 네가 지금껏 본 것보다 세상은 훨씬 더 넓고 흥미롭단다. 네가 보지 못한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처럼,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세상에도 그런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네. 어른들 세상에선 난 아직 걸음마도 못 뗀 갓난아이거든.
어른이 되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건 신나는 일이지만, 힘들 때도 많아. 예전에 선생님께서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라고 하셨어. 그 말을 듣고 난 평생을 어린아이로 살겠다고 다짐했어. 그렇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 돼. 그리고 어른이 되는 건 힘든 일이지. 네가 영재원에 처음 들어가 느꼈던 그 막막함과 좌절감을, 비범한 사람들로 가득 찬 이곳에서 다시 느끼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 네가 그 힘든 시간 끝에 도착할 이곳에서도. 그러니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겠다 너무 애쓰지는 마. 그냥 지금을 만끽하자고. 웃고, 사랑하고, 꿈꾸고, 읽고, 걸으면서 말야. 난 그렇게 청춘을 즐기고, 누구보다 행복해하며 살아갈 거야.
나는 너의 동경이 되어 너의 꿈속에 살고 있어. 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왔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이 꿈같은 삶을 마음껏 누릴게. 그리고 스물둘 나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는 나의 동경이 되어갈 거야.
이 글은 2021년 11월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