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과학자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연구에 참고할 논문을 찾으려 구글 학술검색 사이트를 켜면, 이 문장이 매번 나를 맞는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책을 읽으며 수도 없이 보았던 문장이지만, 이제야 그 말뜻을 조금 알 것 같다.
아이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는 대개 ‘위대한’ 과학자들이다.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알 법한 학자들은 과학자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롤모델이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섯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간 아인슈타인 특별전에서 물리학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전시회에 다녀와서 아인슈타인을 다룬 학습만화를 찾아 읽고는 상대성이론이 뭔지 아냐며 부모님께 아는 체한 것이, 내가 기억하는 과학 꿈나무로서 나의 처음이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를 꿈꿨다. 돌이켜 보면, 영재교육원에서 만난 친구들 대부분이 그랬다. 통일장 이론을 완성하겠다느니, 리만 가설을 증명하겠다느니, 아이언맨을 만들겠다느니 하는 꿈을 꿨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원대한 꿈은 영재학교 첫 학기에 무너졌다. 우주를 수식으로 설명하겠다 큰소리치던 아이는 아인슈타인은커녕, 당장 눈앞의 고전역학 문제에 쩔쩔매고 있었다. 영재학교 입학 초기, 한 선생님께선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가 범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라 하셨다. 저마다의 작은 세상에서 뉴턴의 거인을 꿈꾸던 아이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
카이스트에 와서는 뛰어난 연구자들을 많이 만났다. 노벨상 후보로 종종 거론되던 교수님도 계셨고, 각자의 분야에서 거장이라 불리던 교수님도 많았다. 그런 분들을 보며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다 선을 그었다. 내일 제출해야 하는 선형대수학 문제도 못 풀면서 몇백 배는 더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냐 자조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과제와 씨름하다 새벽 공기를 쐬러 산책을 나섰다. 늦게 잠드는 사람도 일찍 일어나는 사람도 자고 있을 새벽 4시. 학교 건물 이곳저곳엔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시간에도 누군가의 연구는 멈추지 않는다.
모두가 세상을 바꾸는 연구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식을 공유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우리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진다. 비록 “아이언맨을 만들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에서는 조금 멀어져 ‘아이언맨 슈트의 각 부품을 연결하는 나사의 구조에 대한 연구’ 같은 것을 하지만, 이런 연구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아이언맨이 만들어지리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뉴턴이 말한 ‘거인’이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선배의 어깨에 올라서서 그보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후배는 내 어깨에 올라서서 나보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본다. 키의 크고 작음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모여 거인을 이룬다. 그렇게 인류는 세상을 확장해 나간다.
오늘도 나와 함께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영화 이야기를 나눈, 지금도 환한 새벽 불빛을 보태고 있는 이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