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형 Mar 15. 2024

첫 월급

빨간 내복

    첫 월급

- 빨간 내복  -


나이 50이 넘어서야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첫 월급 앞에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그 수식어는 나랏돈!

수식어를 넣어서 문장을 완성하였습니다.


"나이 50이 넘어서야 나랏돈으로 첫 월급을 받다."


첫 월급을 받기 위해서 지난 10년 동안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길 정도로 일했습니다. 정말 수많은 정부 기관과 단체,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글과 말로 읍소를 하였습니다.


때론 미안할 정도로 메마른 말을 건넸고, 때론 구멍 뚫린 마음으로 호소하였습니다.

많은 이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더 많은 이가 무모한 일을 한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중엔 같은 시간을 사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사실 거의 포기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제겐 저를 믿어주는 학생이 있었고, 나아가 학부모님, 마을 어르신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제게 늘 길이 되어주신 신부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선생, 얻어먹을 용기만 있으면 다 삽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도 더 내어주실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시던 신부님!


"이 선생, 한 번 해보이소. 대안학교 학생들도 대한민국 학생 아닙니까. 고등학교도 의무교육이 되는 판에 대안학교 다닌다는 이유로 의무교육 대상에서 빠진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 가장 제일 낮은 자세로 오로지 학생들을 위해 사시는 신부님의 모습에 나는 답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든, 설령 그곳이 청와대일망정 더 간절하게 말과 글을 넣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살았습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참 고맙습니다.


치릴로 신부님과 학부모님의 간절한 외침에 너무도 감사하게도 정부와 교육부와 교육청이 답을 하였습니다.


올해부터 대안학교 학생들도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한 의무교육 혜택을 받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나랏돈으로 받는 첫 월급에는 정말 수많은 사람의 절규와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분께 빨간 내복을 사서 첫 월급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이지만, 그 마음으로 우선 글로 인사를 드립니다.


경상북도의회 의장님 감사합니다.

경상북도교육감님 감사합니다.

경상북도교육청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합니다.


학부모님 감사합니다.

학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학교를 지켜주신 마을 어르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첫 월급의 길을 열어주신 치릴로 신부님 감사합니다.


혹여나 누가 될까 봐 성함을 밝힐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첫 월급 앞에서 대한민국 교육이 다시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들 수 있도록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교육이 교육다울 수 있는 나라!"


교육다움의 근본은 감사를 아는 마음이라는 것을 빨간 내복을 준비하면서 알았습니다.


하지만 교육현장에 그 근본이 사라지고 있음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감사조차 수단이 되고, 형식이 되는 것이 이 나라 교육판입니다.


물론 삭막한 교육현장에도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감사함이 살아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오늘 저는 세상에서 제일 감사한 인사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큰 봄까치꽃이 눈맞춤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해요!"


큰 봄까치꽃과 인사를 나누는 학생들이 있는 나무와중학고가 저는 너무도 감사합니다.


첫 월급으로 오늘 학교에 붓꽃을 심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시) 3월 학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