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영화
믿음과 간절함 사이에는 사뭇 색다른 역학관계가 존재한다. 흔히 간절함은 믿음에서 비롯된다고들 생각하지만 이는 오류에 가까운 착각이다. 예컨대 신을 믿는 자와 신을 믿지 않는 자 중 신을 더 간절히 원하는 쪽은 신을 믿는 자보다 신을 믿지 않는 자인 것이 그렇다. 믿음은 믿는 대상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확신이 있다면 자연히 그 간절함의 무게는 덜해지는 법이다. 또, "그래서 도대체 신이 어디 있는데!"라고 울분에 차 외치는 쪽은 언제나 신을 믿지 않는 자다. 믿는 자는 더이상 묻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간절함은 의심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들만이 의심을 품고, 그 의심을 해소시켜 줄 만한 확신을 간절히 바란다.
신을 제외하고도 의심과 간절함 간의 긴밀한 유착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다. 산타가 명확한 진실인 어린아이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그저 자연에 가까운 질서다. 반면, 산타와 크리스마스 모두를 의심하는 사람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혼란과 불안, 의심이 불신으로 굳어질 수도 있는 공포의 날이다. 산타와 크리스마스를 믿는 어린아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산타의 멋진 선물이지 산타의 존재가 아니다. 산타의 존재를 간절히 바라는 건 이미 산타와 크리스마스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 사람이다.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의 소년이 바로 이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나는 조용히 누워있었다. 이불 뒤척이는 소리도 내지 않고 숨을 죽인 채 꼼짝 않고 있었다. 꼭 듣고 싶은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타 썰매의 방울소리...
대망의 크리스마스 밤, 산타의 썰매 방울소리를 간절히 기다리는 소년의 얼굴에선 어쩐지 설렘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설상가상 위 독백의 다음에는 소년이 자신의 어린 동생에게 "산타가 정말로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던 것이 드러난다. 소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간 모아 온 산타에 관한 기록을 살펴본다. 이럴 수가, 산타의 거처로 알려진 북극이 불모, 생명체 없는 땅이란다. 산타는 다 뻥이었다. 북극은 생명체가 없는 땅이라지 않나.
산타는 없다, 라는 결론에 이르러 한껏 실망한 소년의 방 창문 너머로 웬 기차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백화점 산타와 사진도 안 찍고, 산타에게 편지도 쓰지 않은 소년에게 찾아온 북극행 특급 열차, 폴라 익스프레스. 차장은 탑승을 주저하는 소년에게 "아무래도 올해가 중요한 때인 것 같은데(Sounds to me like this is your crucial year)."라고 말한다. 불모의 땅으로 알고 있는 북극으로 향하는 폴라 익스프레스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시간에 쫓기는 듯 보이는 다소 무서운 차장과 내 또래로 보이는 시끄러운 아이들과 함께. 뭔지는 몰라도 "올해가 중요한 때"라고 하니까.
산타에 대한 의심을 가진 채 탑승하게 된 폴라 익스프레스. 혹시 위험에 처했을지 모르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달리는 기차 위로 향한 소년의 눈에 한 남자가 보인다. 손과 발이 꽁꽁 어는 한 겨울에 달리는 기차 위에 앉아 아리송한 말만 늘어놓는 이 남자. 남자는 소년에게 커피를 건넨다. 하지만 소년은 방금 전 따뜻하고 환한 기차 안에서 이미 뜨끈한 핫초코의 달콤함을 맛본 터. 소년은 남자가 권한 커피를 퉤, 뱉어버린다. 다소 촌스러운 이분법이지만 핫초코가 아이를 상징한다면 커피는 어른의 상징이다. 소년은 아직 커피의 쓴 맛에서 오는 달콤함을 모른다. 소년이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소년의 험난한 여정 내내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또 심지어는 위험에 처한 소년을 구해주기까지 하는 이 남자. 이 남자는 크리스마스를 믿지 못하나 크리스마스를 믿고 싶어 하는 모든 어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의심을 넘어선 불신 때문에 기차 안의 자리는 할당받지 못했으나(그는 소년에게 티켓을 잘 간수할 것을 당부하며 "하긴, 난 숨길 것도 없어."라고 말한다. 그는 표가 없으니까.) 여전히 남아있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와 애정으로 폴라 익스프레스 근처를 맴도는 유령. 유령은 자신이 기차를 소유하고 있고, 기차의 왕이자 북극의 왕이라고 으스대지만(이조차도 평범한 어른의 모습이랑 똑같다. 세월만큼 늘어나는 가진 체, 아는 체.) 사실 그는 그저 이 기차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일 뿐이다. 초대받지 못했음에도 굳이 굳이 매년 폴라 익스프레스 (위에) 몸을 싣고 초라한 모닥불과 커피 몇 잔으로 강추위를 버텨내는 그런 불청객. 요컨대 그는 산타는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산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어른의 유령인 셈이다.
유령이 소년을 돕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아이에겐 아직 희망이 있으므로. 불신과 신뢰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지만 의심과 신뢰 사이는 다르다. 의심과 신뢰 사이에 놓인 강에는 환상 열차를 위한 길이 마련되어 있다. 무사히 신뢰까지 다다를 수 있는 단단한 길이, 튼튼한 선로가 나있다. 그렇게 기차의 안전 여행을 위해 있는 힘껏 꽁꽁 얼어붙은 강은 의심의 마음을 품은 소년을 무사히 북극까지 데려다준다. 의심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산타의 품으로. 진짜 크리스마스의 세계로.
무사히 의심의 강을 건너 산타를 만난 소년은 평생 산타의 방울 소리를 듣게 된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다름 아닌 믿음이라는 것을 소년은 안다. 믿는 자에겐 들리는 법이다.
산타를 의심하면서 산타를 믿고 싶어한 소년의 간절함이 폴라 익스프레스를 불러왔듯, 간절한 마음은 무언가를 이뤄낸다. 간절하지 않은 척, 절박하지 않은 척하는 것이 '어른의 품위'라지만 사실 간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물며 자기 자신조차도 의심하는 우리가 대체 무엇을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산타는 없어!"라며 되지도 않는 냉소로 낭만을 대하지 말고, 낭만을 꿈꾸는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보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괜스레 설레고,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유치하다 비웃지 말고 모르는 척 그 분위기에 휩쓸려보자.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한 발버둥에 동참해보는 것이다. 다 같이 미치면 광기는 평범이 된다.
<폴라 익스프레스>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건 올해 12월 31일까지다.
따뜻한 핫초코와 놀이기구 뺨치는 스릴감이 준비되어 있는 폴라 익스프레스에 서둘러 탑승하세요 여러분!
따뜻하고 설레는 크리스마스로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