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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세 칼바도스 Aug 28. 2020

너무 외로워서 생긴 일

우리가 외로움을 다루는 방법



'외로움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이유 없이 밤새 카톡을 뒤적였던 일. 배고프지도 않은데 허전해서 계속 먹었던 일. 외롭기 싫어서 억지로 힘든 관계를 이어나갔던 일. 부질없는 것에 시간과 돈을 썼던 일. 그냥 너무 외로워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섹스를 했던 일. 이 모든 것이 내가 그저 외로워서 스스로 벌인 일이었다는 것을 문득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외로움'이란 건 어쩌면 우리가 평생 가지고 살아가야 할 어떤 것 일지도 모릅니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외로움’이란 단순한 감정을 넘어선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뇌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며 인간은 모여야 생존에 유리하니까요. 다시 말하면 외로움은 잠이 오고 배가 고프고 섹스가 하고 싶은 것과 같이 본능적인 것이지요. 하지만, 외로움은 조금 더 높은 차원에 있는 듯합니다. 졸리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같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요. 우리는 외로움 때문에 사랑하고 일하고 먹고 심지어 죽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삶의 중대한 문제들을 깊게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외로움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배워본 적도 없다는 게. 우리는 스스로 '외로움'을 다루는 각자의 방식을 찾아내야 합니다.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을 반드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외향성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외로움'을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손쉽게 해소해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향성은 다릅니다.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외로움을 다룰 순 없는 법입니다. 신학자 폴 탈리히(Paul Johannes Tillich)는 '외로움은 한 끗 차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있는 고통을 '외로움'이라고 한다면 혼자 있는 기쁨을 '고독'이라고.


내향성은 '외로움'에 좀 더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고독'에 강합니다. 그 안에서 우주를 느끼고 완벽함과 충만함을 동시에 가지기도 합니다. 가끔 내향성은 곧잘 '외로움'과 '나'를 동일시하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내가 아닙니다. 누구나 분명히 그것을 극복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외로워하고 있구나' '슬퍼하고 있구나' 감정이 나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세요 그리고 기다리세요. '나'와 '외로움'이 분리되는 순간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기쁨만이 감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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