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는 안 해도 문제고 해도 문제다...
생리불순이 처음 온 것은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본적으로 한 두 달은 쉬었다. 2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하고, 중반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 회사를 차렸다. 키 152cm에 몸무게 40kg. 작고 마른 몸으로 회사를 차리고 대표가 된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거저 얻어 365일 퇴근을 하고 나서도 두통을 얻는다는 뜻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2년이 지나서 정신이 완전히 피폐해졌을 즈음. 4개월 정도 생리를 안 했었는데, 당시 병원을 갈 시간이 없어 미루고 미루며 내 몸을 방치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두려워서 가지 않은 것 같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굴욕 의자에 대한 말부터, 갑자기 근종을 발견했다, 혹을 발견했다, 암이 더라..등등. 무서운 말들 투성이었으니까.
가긴 가야 하나?라고 생각할 무렵 업무적으로 일이 터졌고, 사업을 같이 하던 동료와 대립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사업은 접기로 했다. 거래처들을 다 정리하고 집으로 틀어박혀 잠만 잔 지 3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한 결과, 다시 생리가 시작됐다.
마음의 평화가 생리불순의 영향이었나.... 허탈해서 웃음이 나왔다.
3년이 지난 현재. 다시 생리 불순이 찾아왔고, 내 나이는 서른이 되었다. 산부인과 검사를 받으러 가야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가 같이 가자고 말했다. 보호자로 가겠다는 말에 거절했다. 혼자 가게 해달라고. 그러나 굳이, 기어코 엄마는 가겠다고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나 혼자 갔다 온다니까. 내가 애도 아니고, 나 서른이야."
"서른도 보호자는 필요해."
"나 산부인과 혼자 가본 적 한 번도 없잖아. 나 혼자 가게 해줘."
엄마는 고민하더니 자신도 검사를 받으러 가겠다고 했다.
"그럼 나도 검사받으러 갈게."
"무슨 검사?"
"갱년기 심해서 안 그래도 병원 한번 가보려고 하긴 했어."
엄마는 갱년기로 고생 중이었다. 열감이 심하게 올라와 하루에 한 번은 얼굴이 벌게지고, 숨이 벅차 올라 어깨를 들썩이곤 했다. 저녁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수면부족에 시달렸고, 화애락 진을 사줘서 먹고는 있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하는 시점이었다.
병원을 간다고 그 증상이 해결이 될까 싶었지만, 엄마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같이 산부인과를 찾기로 했다. 대신, 접수도 진료상담도 따로 받기로 했다.
병원은 어디로 가지?
주변에 괜찮은 병원이 어디가 있을까 물색하던 중 엄마가 가까운 여성병원을 추천했다. 10년도 더 넘게 오래전,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 엄마가 수술을 받은 곳으로, 당시 엄마를 봐주신 의사 선생님이 아직 계신다고 했다. 이미 전화까지 넣어서 확인했으니 그곳으로 가자는 말에 나는 알겠다고 했다. 위치도 가까워서 6개월에 한 번 검진을 받으러 가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을 잡고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들쑥날쑥 오르락내리락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밥을 먹다 보면 아랫배에서 싸-한 기운이 느껴졌고, 손을 대 보면 찬기가 올라왔다.
여자는 배가 따뜻해야 한다던데.. 생리를 안 해서 배가 차가운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이를 못 낳는 건 아닐까? 자궁에 뭐가 난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들면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합리화에 들어갔다.
어차피 결혼 생각도 없는데, 뭐. 게다가 아이 낳을 생각도 없고.
딱히 가정을 꾸리거나 육아를 할 생각이 없었던 나로서는 크게 문제는 아닐 거라고 합리화했다. 물론, 두려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일주일이 지나 병원을 찾은 순간 대기 의자에 앉은 내내 입안이 바싹 말라갔다. 수납처에서 예약을 확인하는데 엄마가 자신을 먼저 순서로 넣어달라고 했다. 예약자는 딱히 없었고, 대기 줄에도 엄마와 나 그리고 다른 두 여성뿐. 다른 환자들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긴장한 마음에 입안이 바싹 말라갔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소변 검사를 하고, 몸무게와 키, 그 밖에 다양한 정보들을 체크했다.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엄마의 이름이 호명되고 대략 5분 정도가 흘렀다. 엄마가 나오고 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다시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굴욕 의자는 생각보다 굴욕 의자가 아니었다.
진료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증상을 이야기하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 굴욕 의자를 보는 순간 '아, 저게 그.. 의자구나'라고 생각했다. 원피스를 입고 가서 속옷만 벗고 의자에 앉았는데 생각보다 굴욕적이지는 않았다. 다리를 벌리는 순간 매우 치욕적일 거라 생각했으나, 딱히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너무 긴장해서였을까?) 마치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느낌이었달까.
마음속에 불안감과 달리 의사 선생님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검사 결과도 딱히 큰 이상은 없었고, 생리 불순의 특정 이유 또한 없다고 했다. 그저 주사 한방을 맞은 뒤 2주간 상황을 지켜보자고 할 뿐. 주사를 맞은 뒤 조금이라도 피가 비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시에는 피임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이미 확인했던 치료방식이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이 트인 엄마
주사를 맞고 진료실을 나오는 순간, 대기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 중인 모습에 괜스레 울컥하더라. 의자 옆에 다가가서 손을 잡고 진정을 시켜주자 눈동자가 번쩍 떠져서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질문들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났지만, 이 나이 먹고 엄마를 대동해서 산부인과 검사를 받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던 생각이 사라졌다. 같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긴장이 풀렸는지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다.
"내가 의사 선생님한테 말했거든. 딸이 들어올 건데 산부인과는 처음이니까, 번거롭더라도 이것저것 상세히 설명해 주시고, 혹시라도 문제가 있거나 제가 들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아이가 혼자 듣게 하지 말고 저를 불러달라고."
"그렇게 까지 말했어?"
"응~ 걱정되니까. 의사 선생님은 그냥 같이 들으라고 하셨는데, 얘가 혼자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했더니 그럼 그거라고 하셨지."
엄마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을 꽤 많이 한 듯했다.
"그 왜, 있잖아. 장나라 주연 드라마 오 마이 베이비 인가?"
"어, 알어. 그거 왜?"
"가게에서 일할 때 그거 보는데, 보다 보면 또 괜히 걱정되고 싱숭생숭하고 그렇더라고. 그래서 그것도 안 봤어."
엄마가 투정을 부리듯 말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