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은 지 두 달

평생 모르고 싶었던 불안

by 지개인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돈이 되는 글은 더 이상 쓰지 않게 됐다.

내 원고도 쓰기 바빠 죽겠는데 돈 안 되는 일기나 기록을 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블로그 또한 20대에는 열심히 했으나 출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팔리는 글이 아닌, 내가 나를 쏟아내고 보듬기 위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특히나 요 근래에는 더더욱 이 사실을 깨달았고, 나를 위한 글을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브런치를 다시 들어왔고, 언제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글 위에 새로운 기록을 더한다.



1. 평생 모르고 싶었던 불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일들에 대해 전부 나열할 수는 없고, 나열하고 싶지도 않지만, 중요한 것은 내 안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을 느낀다고 들었다.

나 또한 10대, 20대에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고, 30대에 들어와서도 막연한 불안감은 언제나 있었다.

시험 전날 느꼈던 긴장과 불안감.

취업 전 면접을 보러 가기 전날 밤에 느꼈던 긴장과 불안감.

프로젝트를 망칠까 조마조마하며 느꼈던 불안감.

이 회사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내 천직은 이제 맞을까 고민하던 시절의 불안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엄마가 내 곁에 없으면 어떡하지? 아빠가 나를 떠나면? 내 몸이 갑자기 아프면? 이대로 돈을 평생 많이 못 벌고 남들보다 쳐지면? 등등.

다양한 불안감은 인생을 살면서 항시 있었지만,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불안이 나를 찾아왔다.



2. 고민하지 않고 병원을 찾아간 이유

일에만 집중해 앞만 바라보던 나는 내 몸이 상해 가는 것을 몰랐다.

나는 내가 영원히 젊을 줄 알았나 보다.

30대에 접어들어 소화불량을 겪었고, 커피를 달고 살면서 식도염이 심해졌으며, 심해지면 조절하고 나아지면 덜 조절하고 또 심해지면 조절하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을 하면서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날은 모든 게 엉망으로 돌아가는 날 같았다.

좋아하는 가수가 컴백을 하는 날이었지만, 내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이 두려웠고(너무 기대하면 두려워지는 마법...), 핸드폰은 갑자기 SD카드 문제로 먹통이 됐다.

외출을 앞두고 불안요소들이 겹치면서 나는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내 안에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호흡이 거칠어졌고, 속이 뒤집힐 것 같았고, 가슴이 뛰어서 가슴을 부여잡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누군가 내 그런 모습을 보는 것조차 싫어 주저앉았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내가 왜 이러지.. 갑자기 왜 이러지... 아, 원래 안 이러는데... 왜 이러지.."

답을 알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그 말이 계속 나왔고, 나도 내가 이러는 이유를 몰라서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말과 같았다. 그리고 그날 무사히 집으로 귀가한 후 나는 다시 멀쩡해졌다. 주말이 오기 전까지는.


주말이 되고, 가슴에 무언가 내려앉은 걸 느꼈다. 불안감이라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안에 꽉 들어차서 자꾸만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것 같았다.

주변에 우울증을 앓는 친구와 대화를 할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불안함이 몰려온다'던 말.

저 아이는 뭐가 그리 걱정이 됐을까. 인생을 여태 잘 살아왔으면서 무엇이 그리 걱정 돼서 힘들어하고, 불안해하고, 시도도 못하고 저렇게 주저앉아 있는 걸까.

가끔은 나보다도 차분하고 침착하던데.. 대체 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나 스스로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겪었던 그 불안감이 무엇인지, 원하든 원치 않은 나 스스로 그 불안감이란 녀석을 보낼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아니, 노력한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난 주말 동안 두 번 더 찾아온 발작 같은 증세에 무너졌고, 월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근처 정신과를 찾아갔다.


처음으로 상담받은 선생님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처음으로 상담하는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병원 측에서 이야기했고, 지정하고자 하시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분이 근무하시는 요일에 맞게 다시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급했다.

그때는 누구에게 상담을 받더라도 당장 하루치 약을 받아 내 가슴에 앉아있는 이 불안을 없애고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이 상당히 심각해 보였는지 병원 측은 진료 접수를 받았고, 간단한 설문지 두 장을 작성하게 했다.

작성 후 5분 뒤 상담에 들어갔을 때 백발에 인상이 좋으신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말씀하셨다.

"설문지는 제법 차분해 보이는데... 이야기를 해 보니 상태가 좀 심각해 보이네요? 마음을 편하게 먹어요."

인생을 다 살아보신 것 같은 표정은 진심이었다. 선생님의 머리에 백발만큼 많은 일을 겪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안 좋은 뉴스 기사만 봐도 마음이 불안하면, 그런 거 안 보면 되죠."

정답이다. 맞는 말이다. 나도 안다. 세상에 안 좋은 것 빼고 좋은 것만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작가고, 자료조사를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누구보다 많이 봐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사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는 표정을 하신 분에게서 나는 벽을 느꼈다. 어쩌면 내 상태가 좋지 않아 욱하는 마음도 들었는지 모르겠다.

'저는 선생님만큼 살아보지 않아서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약만 받고 이 상담실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이야 누구에게나 어렵겠지만, 살다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그걸 나보다 더 아실 분이겠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 환자가 되어 이렇게 상담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이 정신이 아파서 이런 거라고. 과거의 나는 그게 쉬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게 힘들어서 온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 안 떨어졌다. 그 와중에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보일 것 같은 불안감도 공존했다.

약을 급하게 처방받고, 선생님을 변경 요청해 다시 예약을 잡아뒀다.

그렇게 병원을 나오면서 바로 약을 먹었고,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약은 정말 강했고, 미친 듯이 잠이 쏟아져서 거의 마취된 것처럼 잠들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약을 또 먹었는데... 내 몸이 약발이 잘 듣는 것인지 어쩐 건지... 변경한 선생님과 예약을 잡아둔 다음날 아침, 내 몸은 거의 침대에서 기어 나와야 했다.

그 정도로 잠이 잘 깨지 않았고, 겨우 엄마의 부축을 받아 택시를 타고서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택시 안에서는 서서히 잠이 깼고, 병원에 도착해서 새로운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나서야 들었다.

"약을 강한 걸 주시긴 했네요. 어제 많이 심해 보이셨나 봐요."

감사해야 할지, 어찌해야 할지... 참...ㅎ



3. 자나팜정

자나팜정을 처방받았다.

선생님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진단을 내려주시지는 않았다.

약만 받았고, 진단보다 약이 필요했고 얼른 나아지고 싶었던 나이기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약을 먹으니 마법처럼 불안이 사라진 것 같아 약을 검색해 봤다. 불안장애에 처방되는 약인 듯했다.

자나팜정은 '필요시'라고 적힌 약봉지에 담겨서 일주일 치를 주셨고, 저녁에 자기 전 먹는 수면을 도와주는 안정제는 '취침 전'이라고만 적혀있었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서 너무 괜찮아진 나 자신에 많이 놀랐다.

몸이 아픈 게 아닌 불안감이 오는 것이니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될 줄이야.

날아갈 것 같았다. 사람들이 왜 정신과를 찾아가는지 알것 같았다.

그러나 주변에 자나팜정을 처방받았던 또 다른 친구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당장에 약을 먹으면 나아졌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거였나 싶겠지만, 비 오는 날에 울적하고 맑은 날에 기분이 좋은 것처럼, 다시 힘들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어."

그때가 찾아와도 너무 놀라지 말고, 좌절하지 말라고 했다. 그럴 수 있는 거니까.

친구는 약의 효과로 기분이 좋았다가 다시 힘들어진 날, 더 힘들어했다고 했다.

나아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음에 좌절감이 느낀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면서도 정신과를 찾아가기로 한 것 자체를 너무나 잘한 일이라며 칭찬했다.

정말 아주 잘한 것이라고.



4. 버티지 말고...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과를 극한의 상황에 찾아간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이 극에 달했을 때, 불안과 우울이 극에 달했을 때, 나 스스로 어떻게 하지 못해 가족마저 도와주지 못할 때.

사실 나는 내가 그리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애초에 불안장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처음 증세가 찾아왔을 때에도 숨고만 싶었지,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내 마음과 정신을 읽은 몸이 주말 동안 신호를 주었기 때문에 병원을 갔는지 모르겠다.

내 친구는 나와 같이 증상이 왔지만 한 달을 버텼다고 했다.

그저 이겨내려고 버티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결국 병원을 찾아갔다고 했다.

상담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기만 했음에도 눈물이 흐르던 그 아이는 버틴 것을 후회했다고 했다.

가서 약을 처방받고 나서는 버틴 것을 후회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빠르게 병원을 찾아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우연히 보고 버티시는 분이 있다면... 제발 가서 약이라도 처방받기를 바란다.



5.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선생님을 잘못 만나면 더 부작용이 있다던데...?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한다던데...?

그냥 심적으로 무뎌지게 하는 약이라 먹으면 졸리고 일에 집중도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런저런 고민이 많겠지만, 분명 약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케이스.

나 또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졸리지 않은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었고, 선생님은 졸린 약은 아니니 걱정 말고 편하게 먹으라고 하셨다.

심지어 소화까지 도와주는 약이니 불안감이 찾아와 속이 조금 불편해지더라도(공황장애, 불안장애 증상에는 소화불량과 메슥거림도 있다) 약을 꾸준히 먹으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난 약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내가 당장 살고 싶어서 약을 처방받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간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냥 누구라도 무언가 약을 줘서 나의 이 상태를 나아지게 할 수 있다면 뭐든 먹을 기세였다.

당장 내가 힘든데, 잠자고 눈을 떠도 힘들어 미치겠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나.

공황장애를 겪는 이들이 병원에 가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정말 죽겠어서. 못 견디겠어서. 처음 느껴보는 이 불안감에서 하루라도 더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난 약을 먹었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아주 많이 나아졌다.



6. 인생의 문제=게임의 퀘스트

사실 나는 좋고 좋은 일 사이에 그 일들을 잘하고자 느꼈던 긴장감과 불안감이 내 병을 키웠다.

원하던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글을 론칭할 수 있게 되어 준비하는 기간이었고, 내가 아주 바라던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준비과정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그 긴장이 멘탈을 무너트리고, 몸도 망가진 것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나는 "산 넘어 산이구나..."란 말을 달고 살았다.

인생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고,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내가 걱정했던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일어나 놀라게 할 때가 많다.

물론, 그만큼 좋은 일도 일어난다. 정말 예상치 못한 좋은 일들.

그때마다 나는"산 넘어 산이구나..."에서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하고 생각한다.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나는 항시 그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게임의 퀘스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깨야 하는 자잘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결하거나 넘기곤 한다.

어차피 어떤 문제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물론, 가끔은 지금의 내가 아닌 나중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 경우도 있다.

내가 먹는 약을 그 해결을 위해 힘을 빌리는 부스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게임의 캐릭터도 나약하지만, 아이템을 장착하고 점점 성장해 최종 악당을 무찌르지 않나.

나 또한 나약하지만, 이겨내고 나아가려면 부스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강하게 하고, 버티게 할 무언가.

내 몸은 물론이고, 멘탈을 흔드는 것들이 있어도 붙잡고 주어진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있어야 주어진 시간 동안 버틸 수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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