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페토 유레카 모먼트 #3
인천에서 - 에티오피아 - 이스탄불을 거쳐 파리까지 약 50시간을 넘어 파리 숙소에 도착했어요. 이동 중에는 와이파이도 잘 터지지 않아 가상세계와 단절된 채 현실세계를 온전히 누리는 경험을 했어요.
이번 한 주는 어떤 경험을 하고 계신가요?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함보다는 자유로움이 더 크더라고요. 당시의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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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Great Ideas, "경험(Experience)"
14일 목요일 새벽 12시 5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에어팟 케이스에서 에어팟을 꺼내어 끼고 잔잔한 노래를 틀었어요. 좌석 등받이에 있는 담요를 집어 들고 봉투에서 꺼내어 온몸을 둘렀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연락을 남긴 후 눈을 감았어요. 그간 피곤했던 탓인지 금방 잠들었다가 말소리에 눈을 떴어요. 기체 문제로 1시간이나 늦게 이륙한 거였어요. 시작부터 불안했지만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잠들려고 했어요. 근데 이때부터 시작된 오한이 에티오피아 경유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어요.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살이 온 거였죠.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성분이 거낸 준 담요 덕분에 그나마 따뜻하게 이동할 수 있었어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고산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평소 기온이 높지 않은 편이라고 해요. 더군다나 비가 내리고 있어서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어요. 몇년 전에도 경유 때문에 들렸던 곳이지만 여전히 낯설었고요. 몸이 좋지 않아 도시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약 6시간 후 이스탄불로 떠났어요. 다음 문제는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발생했죠.
이스탄불 공항은 국제공항으로서 규모가 튀르키예에서 최대에요. 수하물을 찾는 공간도 25 섹터로 나뉘어 있을만큼 규모가 있는 공항이죠. 저희 비행기의 수하물 위치는 7번이었어요. 캐리어들이 하나씩 내려오는데 무거운 가방을 벤치에 내려놓고 옆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그렇게 족히 1시간은 기다렸던 것 같아요. 수하물 이동이 완료되었다는 안내가 나오고, 캐리어를 찾지 못한 저를 비롯한 십여명의 승객들은 어쩔줄 몰라하며 직원에게 항의 했죠. 알고보니 수하물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저희와 함께 넘어오지 않았고, 16일 오후 비행기로 이동이 될거라고 전달받았어요. 처음엔 그저 멘붕이었어요. 저는 15일 오후 파리행 비행기를 타야했고, 캐리어를 두고 가자니 불안 했으니까요. 다행히 파리공항까지 수하물을 보내준다는 약속을 받은 후 숙소로 돌아갔어요.
공항 근처 마을에서 하루 묵었어요. 제 기분을 풀어주려는지 하늘이 무척 맑았어요. 기분전환도 할 겸 갈 수 있는 만큼 택시를 잡지 않고 걸었어요. 몸도 훨씬 좋아지는게 느껴졌어요. 그러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캐리어가 있었으면 이렇게 걸을 수 있었을까?’
샤를 드골 파리 공항에 드디어 도착했어요. 마침 헤더가 공항까지 마중나와서 더 기분이 좋았어요. 오랜만에 인사도 하고 기차표를 끊어서 기분좋게 8시반 기차에 올라탔어요. 구글지도를 검색해봤을 땐 보통 1시간 반에서 2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요.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가 탔던 기차가 공항을 출발한 지 3정거장만에 고장이 났어요. 그것도 미리 안내를 해주지 않는 바람에 전원이 열차 내에서만 30분을 대기해야 했어요. 재미있던 건 국가별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었어요. 프랑스 인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지인들과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고 있고, 미국인들은 해결방법을 찾다가 급기야는 열차에서 내렸어요. 저희는 영문을 몰라 그저 어리둥절하고 있었죠.
한시간 가량을 날려먹고 나니 벌써 10시가 다 되었어요. 이번엔 원래 타야하는 기차 운행이 종료 되었다는 알림이 떠요. 결국 총 버스를 2회, 기차를 3회 갈아타는 루트를 통해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어요. 이스탄불에서 파리까지 4시간 비행인 반면에 파리 공항에서 텍스트 하우스까지 5시간이 소요된걸 보면서 참 길고도 다사다난한 여정이란 걸 다시 한번 느꼈었죠.
출발할 때의 다짐을 다시 떠올려봤어요.
‘과연 혼자만의 시간을 잘 누렸나?’
훗날 이 여정을 회상한다면 감기몸살, 비오는 날씨, 수하물 지연, 긴 이동시간, 대중교통의 변수 등 장애물이 참 많았던 시간으로 기억할 거 같아요. 다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할 거 같아요. 만약 캐리어가 제시간에 도착했다면, 이스탄불의 거리를 못걸었을 것이고, 파리에서 5시간을 캐리어를 들고 헤맸어야 했을 거에요. 예상보다 이틀은 늦게 캐리어를 찾았지만 덕분에(?) 한결 편한 여정을 누릴 수 있었던 거죠.
또 예전 같았으면 하나하나의 변수에 크게 화를 냈을 것 같아요. 해결 가능한 상황도 더 악화시키는거죠. 계획이 틀어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그렇게 많이 화가 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뭐 그럴 수 있지’, ‘다른 방법이 있겠지’하면서요.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이전의 비슷한 경험이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줬나봐요.
이번 여정을 통해 느낀 건, 어떤 경험이든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최종적인 판단을 섣불리 내리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만, 오늘의 경험 하나하나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순간을 즐기는 거죠. 모든 것이 다 마치고 고요해진 후에야 가만히 눈을 감고 이 경험을 평가해볼 수 있을 거에요.
그대에겐 어떤 경험이 가장 먼저 기억에 떠오르나요?
그 기억은 좋은 기억인가요? 좋은 기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라도 들어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