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와 함께 날려보내기
그 날은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괴팅겐에서의 날들이 채 한 달도 안 남았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한 3주 정도 남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Innenstadt (도시 중심부) 거리를 걸으면서상점 밖 회전식 엽서 진열대에 엽서를 진열해놓은 상점에 눈이 갔다. 몇 달 전 나의 친구가 데려가 주었던 슬로베니아의 Lake Bled가 엽서에 그려져 있었고, 그 엽서가 특히 눈을 사로잡았었다.
그 상점은 편지지와 엽서 등 지류와 문구류, 자잘한 소품 등을 파는 상점이었고, 독일에서 보기 어려웠던 감각적인 제품들이 많았었다. 한국 소품샵의 독일식 버전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한국과는 다르게 조금 채도가 낮고 클래식한 소품 및 지류들을 주로 파는 곳이었다. (해리포터의 Olivanders Wand Shop이 연상되는 곳이었다.)
독일에서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 동안 친해진 친구들에게 한 명씩 편지를 작성해서 전달주고 싶었다.
한 2-30분 정도 계속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제품들을 구경하고, 친구들에게 작성해서 주기에 딱 알맞은 크기와 색감과 질감의 편지지를 고르기 위해 진열대 위 책꽃이 사이사이에 꽃혀있던 편지지들을 꺼내서 보고, 다시 넣고를 반복했었다.
그 중 압화가 종이 전반에 새겨져 있던 A4 크기의 한지 질감 종이를 발견하였고, 보자마자 반해서 두세장 정도를 구매하였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줄 편지지로 핑크색의 빛이 미묘하게 반사되는 매끄러운 종이가 포함된 편지지 세트를 여닐곱장 정도 구매하였다.
내가 원래부터 엄마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밤 도무지 글로 작성하지 않고서는 반복되는 생각들과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아다닐 것 같아 압화가 새겨져 있던 종이를 꺼내 엄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독일에서의 생활이 진심으로 만족스러웠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과 여유였으며 미래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으로 가득했었다 (진심이다). 그러나 그런 여유로운 나날들을 친구들과 보내고 홀로 방에 들어왔을 때, 가끔씩 마음이 울컥하고 목구멍이 홧홧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엄마에게 아쉬움과 원망의 감정이 드는 날들이 있었다. (항상 느끼지만 - 왜 아빠에게는 별 생각이 들지 않는걸까?)
평소에는 그 마음들을 그냥 누르고, 별 생각없이 지나치곤 했었는데 그날 밤은 이 감정을 적어서 엄마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에는 80%의 솔직함과 20%의 미화하는 말들로, 결국에는 엄마를 정말 사랑한다는 결론의 글을 작성하였다. 솔직하게 작성하였고, 예쁜 말만 작성하지는 않았다. 내 10대와 20대 초반의 우울감, 사랑과 우정이라는 것을 독일에 와서 사귀게 된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내용들, 엄마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솔직하게 작성했다.
내가 그 당시에 엄마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뭉뚱그려진 감정들의 느낌만 대략적으로 떠오른다). 그 때의 감정들을 편지에 꾹꾹 눌러담고, 당시 캐나다에 있었던 엄마에게 우편으로 보내면서, 그 감정들은 그 편지와 함께 바다를 건너 날라갔었다.
나는 그 날 괴팅겐 기숙사 방 의자에 앉아서, 엄마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 감사함과 비난, 사랑과 미움을 다 같이 보냈었다. 그런 모든 감정을 편지에 써내려감으로써 내 안에서 맴돌던 감정과 생각들이 조금이나마, 아니 사실 많이 해방될 수 있었다.